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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너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너는 기차를 타고 떠났다 이후로 나는 철길에서 서성거렸고 아무 驛에서나 기웃거렸다 기차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가슴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듯했다 가슴이 깊이 패였다 네 마지막 이미지가 유령처럼 내 영혼의 허허벌판 위로 떠돌아다녔다 내가 늙어가는 동.. 2005. 4. 6.
바람없는 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나는 나부낀다 이 도시 모든 깃발들이 죽은 바람에 젖어 축 늘어지고 저인망처럼 훑고 지나가는 햇살에 고층건물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목을 뽑고 순순히 끌려가도 미등기의 내 욕망에는 상표가 따로 없다 누가 저 거리에서 발을 멈추는가 선뜻 발 멈춰 나부끼는.. 2005. 4. 3.
비가 오면 비가 오면 그대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 향기 짙은 그대 머리맡에 전율하는 내 목소리로 하여 그대를 감전시키고 싶다 이윽고 빗방울을 닮은 그대의 청아한 목소리로 하여 이토록 질긴 사랑과 함께 모질게 감전당하고 싶다 한줌 재로 쓰러져 저 쏟아지는 가파른 도시의 급류를 타고 그대 .. 2005. 4. 3.
당신을 보내고.. 당신을 보내고 시시때때로 뒷산에 오릅니다 숲의 향기 속에 들면 당신 생각에 잠기고 잎새들의 수런거림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무심히 흐르는 구름 한 점도 당신께 가는 것만 같아 당신이 떠난 뒤에야 나의 모든 길이 당신께로 열린 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눈길 닿는 것마다 온.. 2005. 4. 3.
다시 쓸쓸한 날에 다시 쓸쓸한 날에.. 오전 열시의 햇살은 찬란하다 무책임하게 행복을 쏟아내는 라디오의 수다에 나는 눈이 부셔 금세 어두워지고 하릴없이 화분에 물이나 준다. 웬 벌레가 이렇게 많을까 살충제라도 뿌려야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세상의 모든 주부들은 오전 열시에 행복하므로 엽서로 .. 2005. 4. 2.
푸른 색 자전거에 그대를 태우고 푸른 색 자전거에 그대를 태우고 아침 바다로 가는 길 초곡항 지나 장호항으로 가는 구부러진 길가에서부터 그리움은 시작된다 햇살 충분한 눈부신 아침 바다에서 푸른 그대를 만나고 싶다 돌아서 돌아서 장호항으로 가는 구부러진 길 그 구부러진 길 돌아설 때마다 그리움은 쌓이고 햇.. 2005. 3. 31.
봄편지.. 구례군 산동면에 지금 산수유 노란 꽃물결이 흐른다는 소식 하나 받았습니다 섬진강 변의 다압마을엔 매화꽃 흐드러지고 지나는 사람마다 마음이 걸려 허방에 빠진 사람들 꽃 그림자진 그늘마다 몽울몽울 피어나는 추억과 앉아 있다고도 합니다 마음 붙들려 지상에 발 닿지 못 하고 얼.. 2005. 3. 29.
내 사랑은... 내 사랑은 몇 번 허물어진 흙담이었네 한 방울 이슬도 안되는 마른 안개였네 어딘가 쌓이는, 베어지지 않는 어둠 속의 칼질에 흩어지는 꽃잎이었네 여린 바람에도 넘어지는 가벼운 풀잎, 기댄 풀잎이 누워도 따라 누워 버리는 마른 풀잎이었네 내 영혼은 어디에도 쉴 수 없는 한 줄기 시내, 그 시냇물 속에 뜬 한 점의 구름 그 구름의 풀어지는 그림자였다네 때로 내 얼굴은 그런 그늘에도 묻어가 버리는 물기였다네 내 사랑은 한낮 뙤약볕 뜨거운 자갈밭에 맨발로 서서 보는 들패랭이 꽃, 그 꽃잎 떨어진 빈 꽃대 그 부근의 희뿌연 설움, 그런 배고픈 귀울음이었네 끝없이, 끝도 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다 다시 끝을 보는 끝에서 처음을 여는 배고픈 신새벽의 서리꽃 핀 나뭇가지에 웅크린 새였다네 나의 고향은 한때 바다였다네 몇 .. 2005. 3. 26.
특급 열차를 타고 가다가 .. 이렇게 서둘러 달려갈 일이 무언가.. 환한 봄 햇살 꽃그늘 속의 설렘도 보지 못하고 날아가듯 달려가 내가 할 일이 무언가... 예순에 더 몇 해를 보아 온 같은 풍경과 말들 종착역에서도 그것들이 기다리겠지.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산역에서 차를 버리자. 그리고 걷자, 발이 부르틀 때까지.. 복사꽃 숲 나오면 들어가 낮잠도 자고.. 소매 잡는 이 있으면 하룻밤 쯤 술로 지새면서 이르지 못한 들 어떠랴.. 이르고자 한 곳에 풀씨들 날아가다 떨어져 몸을 묻은 산은 파랗고 강물은 저리 반짝이는데 ... 신경림 2005.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