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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春 이해하기 힘들어라. 내 젊은 날은 왜 그리 말도 없이 훌쩍 날 떠난 건지. 청춘 옆에는 시든 풀잎과 낙엽이 가득 실린 기차가 늘 대기 중이었던가. 바람처럼 빠르고 긴 기차가. 지금 봄에서 진달래와 개나리 내리고 내리자마자 돌아와 연인 찾듯 앞다투어 피어나는 벚꽃의 떠들썩함. 정작 어느 겨울인가 떠난 그대도 안 오고 내 청춘도 끝내 안 돌아오고 폐쇄된 간이역 같은 내 마음은 지금까지 폭설 중 가버릴 양이면 사랑이나 그리움 같은 분홍진 것들 전부 데리고 영원히나 가버릴 것이지 청춘이 지나간 뒷자리엔 쓸모없는 봄만 가득히 도착한다. 김하인 2005. 5. 18.
일인분의 고독 일인분의 고독 /장석주 당신이 내게 보인 뜻밖의 사적인 관심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관례적 방식을 빌기는 했지만, 당신의 '사랑한다'는 고백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잎을 가득 피워낸 종려나무, 바다에 내리는 비, 그리고 당신. 그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기름진 경작지와도 같은 당신의 황금빛 몸, 물방울처럼 눈부시게 튕겨오르는 당신의 젊은 사유, 그리고 서늘한 눈빛을 상상만 해도 나는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와디를 아시는지요. 사막의 강, 우기 때 물이 흐른 흔적만 남아있는 메마른 강. 난 그런 와디나 다름없어요. 누구도 받아들일 줄 모르는 인색하고 협량한 마음의 와디. 당신이 흐르는 강물이 되어 내 협량한 마음의 와디를 가.. 2005. 5. 18.
그리운 사람 세월이 지나가야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나무라다가 문득 나무라는 그 목소리가 누군가를 닮았다고 생각할 때 아니면 즐거운 일로 껄껄 웃음 터뜨리다가 허공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그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전화가 울리고 그 전화가 알리는 급보가 채 끝나기도 전에 마지막 숨을 놓아버리신 아버지 가신 뒤에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사실은 흐른게 아니라 고여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 세월속을 내 몸이 허위허위 헤쳐나왔습니다 그렇게 헤쳐오는 동안 문득 깨달아진 게 있습니다 그 작은 마당에 목련나무나 앵두나무 한 그루라도 더 심고 싶어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된 나는 지금 그리움을 속으로 안아야 할 나이입니다 김재진 Maggie/Jean Redpath 2005. 5. 14.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문이 닫히고 차가 떠나고 먼지 속에 남겨진 채 지나온 길 생각하며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얼마나 더 가야 험한 세상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아득한 대지 위로 풀들이 돋고 산 아래 먼길이 꿈길인 듯 떠오를 때 텅 비어 홀가분한 주머니에 손 찌른 채 얼마나 더 걸어야 산 하나를 넘을까.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 젖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얼마나 더 가야 네 따뜻한 가슴에 가 안길까. 마음이 마음을 만져 화사하게 하는 얼마나 더 가야 그런 세상 만날 수가 있을까. 김재진 2005. 5. 13.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의 한 장면 아주 짧았던 순간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된 적이 있다 봄날이었다, 나는 창 밖을 지나는 한 여자를 보게 되었는데 개나리 꽃망울들이 햇빛 속으로 막 터져나오려 할 때였던가 햇빛들이 개나리 꽃망울들을 들쑤셔 같이 놀자고, 차나 한잔 하자고 그 짧았던 순간 동안 나는 그만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 여자를 사랑해왔던 것처럼 햇빛이 개나리 여린 꽃망울을 살짝 뒤집어 개나리의 노란 속살을 엿보려는 순간, 그 여자를 그만 사랑하게 되어서 그 후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몇 명의 여자들이 계절처럼 내 곁에 머물다 갔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여자를 못잊어 개나리 꽃이 피어나던 그 무렵을 나는 못잊어 그 봄날 그 순간처럼 오랫동안 창 밖을 내다보곤 하는 것.. 2005. 4. 28.
그리운 이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저장된 이름 하나를 지운다 내 사소한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 더듬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나를 일격에 넘어뜨리는 가로등, 일어나지 마라 쓰러진 몸뚱이에서 어둠이 흘러나와 너의 아픔마저 익사할 때 그리하여 이 도시의 휘황한 불빛 안이 너의 무덤 속일 때 싸늘한 묘비로 일어나라 그러나 잊지 마라 묘비명으로 새길 그리운 이름은.. 2005. 4. 28.
다시 그리움은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 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오월.. 2005. 4. 23.
연가 허락하신다면, 사랑이여 그대 곁에 첨성대로 서고 싶네, 입 없고 귀 없는 화강암 첨성대로 서서 아스라한 하늘 먼 별의 일까지 목측으로 환히 살폈던 신라 사람의 형형한 눈 빛 하나만 살아,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일 년 삼백예순닷새를 그대만 바라보고 싶네 사랑이란 그리운 사람의 눈 .. 2005. 4. 16.
강으로 가고 싶다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 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 버리거나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척을 저어나가는 날이 한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2005. 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