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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323

가던 길 멈춰 서서 가던 길 멈춰 서서 어느 상가를 지나는데 아주 화려하고 예쁜 잠옷이 걸려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고가품 같았다. 얼마냐고 물으니 주인여자가 ‘손님이 입으실 거예요?’ 하고 되물었다. 사실 나는 호기심에 값만 물어본 것이지만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여자는 대답 대신 밑에서 내복 한 벌을 꺼내 앞으로 툭 던지며 “재고 남은 건데 만이천원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이니 가난해서 고가의 잠옷은 엄두도 못 낼 거고, 목발까지 짚은 별로 아름답지 못한 몸에 예쁜 잠옷이 가당찮다는 생각에서 그 여자 나름대로의 배려와 친절이었을 테지만, 난 적이 불쾌했다. 꽤 오래 전 유학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해 여름 방학에 잠깐 귀국해 있는 동안 동생과 명품을 많이 판다는 패션가를 지날 일이 .. 2006. 4. 30.
내 생애 단한번 나의 겉모습은 가면 나한테 속지 마세요.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이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나는 몇 천 개의 가면을 쓰고 그 가면들을 벗기를 두려워한답니다. 무엇무엇하는 '척'하는 것이 바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죠. 그렇지만 내게 속지 마세요. 나의 겉모습은 자신만만하고 무서울 게 없지만, 그 뒤에 진짜 내가 있습니다. 방황하고, 놀라고, 그리고 외로운.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숨깁니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받아주고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렵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게 밝혀지고 그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할까 봐 겁이 납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함의 가면을 쓰고 필사적인 게임을 하지만, 속으로는 벌벌떠는 작은 아이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가면 뒤.. 2006. 4. 30.
그가 내 노트에 별자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보현산천문대별아저씨그는별들과놀다가혼기를다 놓쳤다어떤별이그에게시집와줄까술이라도취한날그 는별들을만지작거리다가간혹떨어뜨리기도했다] 그가 내 노트에 별자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밤에도 불 켜지 않는 그의 방은 세상의 모든 별로 가득 차 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저 만.. 2006. 4. 26.
비오는 창가에서 표하기 힘든 행복감이 제 마음에 느껴집니다 쓸쓸하던 실내 비에 젖은 유리창 무겁게만 들리던 시계 소리가 갑자기 아름답게 조화됩니다 당신께서는 우표 한 장이 나를 수 있는 일상의 편지를 주셨지만 저로서는 비할 바 없는 환희를 선사 받은 것입니다 만년필, 잉크보다도 먼저 챙기셨을 그 귀한 시간 당신의 말씀 구절 구절은 이렇게나 제 삶을 포근하게 합니다 침묵처럼 둘리운 여백에서도 느껴지는 당신의 사랑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이 계신다는 생각만 해도 제 행복은 가득히 살아납니다 2006. 4. 21.
강물과 나는 맑은 날 강가에 나아가 바가지로 물에 비친 하늘 한 자락 올렸습니다 물고기 몇 마리 구름 한 송이 새소리도 몇 움큼 건져 올렸습니다 한참동안 그것들을 지고 돌아오다가 생각해보니 무래도 믿음이 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을 기르다가 공연스레 죽이기라도 하면 떻게 하나 나는 걸음을 돌려 시 강가로 나아가 그것들을 강물에 어 넣었습니다 물고기와 흰구름과 새소리 모두 강물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날부터 강물과 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2006. 4. 19.
들꽃에게 지다 가슴에 유서를 품고 살던 날들이 있었다 지지리도 못나서 나는 네 창가의 시클라멘도 네 가슴의 장미도 되지 못해서 석 달도 넘게 우체부가 오지 않은 가문 날 연애도 혁명도 먼먼 날 잡풀 우거진 언덕에서 나를 재운 것은 스물세 알의 아달린이었으나 풀잎 이슬로 깨워 나를 다시 일으켜.. 2006. 4. 12.
다시 꽃피는 시절 여보게, 세상이 늘 이리 따뜻하란 법은 없네 기차가 늘 저리 지나가지도 않네 나야 쓰레기통을 뒤지면 하루 살고 취객의 주머니에서 간식거리를 집어내기도 하네 여보게 어떤 녀석은 오래오래 잘살다가 손자놈들에게 밟혀 죽었다고도 하네 또 안개가 몰려오네 과연 자네는 행복했을까 나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을 마누라에게 아이에게 쥐털만한 유산에 직업에 칭칭 감겨 산다고 즐겁게 불평하더니 망할 놈의 안개, 비 들어오네 여보게, 자네 말 듣는 사람 세상에 없네 나는 그 길로 가지 않았네 혼자 웃고 투정하네 꽃피는 마을에서 살고 싶었네 꽃피는 마을에서 울고 싶네 성석제 2006. 4. 11.
내 마음의 빈터 가득 찬 것보다는 어딘가 좀 엉성한 구석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낍니다 심지어는 아주 완벽하게 잘생긴 사람보다는 외려 못생긴 사람에게 자꾸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난 나의 많은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지지요 조금 덜 채우더라도 우리 .. 2006. 4. 7.
예랑의 키다리 아저씨 중에서.... 당신은 내게 묻습니다. 왜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냐고... 당신은 눈에 띄는 미남도 아니고... 성격이 아주 좋아서 날 푸근하게 해준다거나, 쉴 새 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며... 날 달콤함에 빠지게 해주는 사람도 아닙니다. 정말 내가 왜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 걸까요? 당신은 나에게 참 성실.. 2006.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