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323 무진기행 이 바닷가에서 보낸 일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死語)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었다 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안타까움, 그런 것들이 굴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2006. 9. 3. 나는 삼류가 좋다 이제 나는 삼류라는 걸 들켜도 좋을 나이가 되었다.아니 나는 자진해 손들고 나온 삼류다. 젊은 날 일류를 고집해온 건 오직 삼류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더러는 삼류 하면 인생의 변두리만을 떠올리지만 당치않는 말씀. 일류를 거쳐 삼류 에 이른 사람은 뭔가 다르다. 뽕짝이나 신파극이 심금을 울리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 편해 오래 입어도 끝내 버리지 못하는 낡은 옷같은 삼류. 누가 삼류를 실패라 하는가. 인생을 경전(經典)에서 배우려 하지 말라. 어느 교과서도 믿지 말라. 실전은 교과서와 무관한 것. 삼류는 교과서가 가르쳐 준 문제와 해답만으로는 어림없는 것 김인자 2006. 9. 1. 사랑................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 2006. 8. 26. 넌 뭐가 되고 싶니? - 넌 뭐가 되고 싶니? - 몰라.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되고 싶어.. - 넌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구나. - 아니야. 대단한 게 되려는 건 아니고 나를 발견하고 싶은 거지. 내 속의 나를 꺼내고 싶은거야. 검은설탕이 녹는동안/전경린 2006. 8. 24. 외로운 세상 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 만날사람이 없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졌다... 사람들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섞여지지 않았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2006. 8. 23. 내가 사랑하는 사람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사람 가까이 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볼 수 없어 차라리 다행인 사람 너무 멀리 있어 오히려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 내 마음의 하얀 눈을 밟으며 눈의 눈물을 빨간 코트깃에 묻고 사랑하면서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 한 번 본 적도 없는데 매일 밤 별빛으로 쏟아지는 사람 옷깃 한 번 스치지 않았는데 칼바람을 자르고 포근한 눈으로 내리는 사람 옆에 있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내 마음을 적시는 사람 조그마한 배 한 척을 띄우고 먹구름이 낄 때마다 가슴 조이게 만드는 사람 책갈피 속 엉겨붙는 글자처럼 나를 울리는 사람 아파 졸아든 상처를 열어젖히며 내 슬픔을 가만히 묻어주는 사람 걷거나 앉아 있어도 안개비처럼 촉촉이 적시는 사람 박정원 2006. 8. 12. 소유가 아닌 존재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재입니다 언제나 사랑하고 싶다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그 때가 언제가 되든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면.. 오랜 시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바라보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 2006. 8. 12. 나를 비켜가는것들에 대한 예우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아련함이 허용되지 않는 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전해주었다 슬픈 사실들이 하나 둘 나부낀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사방을 둘러보는 내가 있었음을 눈썹이 가지런하게 누운 밤에 뒤늦은 고백을 한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나를 비켜갔는지에 대한 기억도 허물어져 간다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나는 먼 곳에서도 그 통증을 느꼈다 나를 비켜갔던 것들에 대한 예우로 난 많이 아픈척해야 했다 나를 비켜가는 것들이 덜 미안하게 2006. 8. 1. 저만치 와있는 이별 모든 것의 끝은 있나니 끝이 없을 것 같은 강물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들도 끝은 있나니 또 마땅히 그래야 하느니 청춘도 그리움도 세월도 그리하여 우리의 삶마저도… 내 사랑도 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네 돌아보면 저만치 와 있는 이별,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아 나는 애써 외면하고자 했네 내 사랑도 끝이 있다는 것은 결코 알고 싶지 않았네 결코 알고 싶지 않았네 이정하 2006. 7. 24.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