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닷가에서 보낸 일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단어는 다소 천박하고 이제는 사람의 가슴에 호소해 오는 능력도 거의 상실해
버린 사어 (死語)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무렵의 내게는 그 말밖에 써야 할 말이 없는 것처럼 생각
되었었다
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
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
안타까움, 그런 것들이 굴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
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바다는 상상도 되지 않는 먼지 낀 도시에서, 바쁜 일과중에, 무표정한 우편배달부가 던져 주고 간
나의 편지 속에서 "쓸쓸하다"라는 말을 보았을 때 그 편지를 받은 사람이 과연 무엇을 느끼거나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 바닷가에서 그 편지를 내가 띄우고 도시에서 내가 그 편지를 받았다고
가정할 경우에도 내가 그 바닷가에서 그 단어에 걸어 보던 모든 것에 만족할 만큼 도시의 내가
바닷가의 나의 심경에 공명할 수 있었을 것인가? 아니 그것이 필요하기나 했었을까?
*김승옥, [무진기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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