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323

격렬한 사랑도 없이 사랑은 가고 *격렬한 사랑도 없이 사랑은 가고/김왕노* 격렬한 사랑도 없이 사랑은 가고, 느릿느릿 갈 것 같은 사랑이 어느새 가고, 격렬한 사랑도 아니었는데 모든 게 타 버리고 혼자 뼈만 남은 사랑, 격렬한 사랑도 없이 사랑은 가고, 아물지 않는 울음이 있어,항생제가 듣지 않는 상처가 있어, 격렬.. 2008. 9. 15.
추억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것 그것이 그늘 같은 것이라면 좋겠다 길을 가다 무성한 줄기와 잎을 드리운 나무를 만나면 그 아래 잠시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추억이라는 것 바로 그런 그늘 같은 것이라면 좋겠다 [이정하 산문집중에서] 2008. 8. 23.
그리운 사람은 기차를 타고 온다 아지랑이 돋아나는 황토 언덕에 그 사람 미소만 싱싱하게 살아나고 댓잎에 스치는 바람소리에도 행여 그 사람의 발소리인가 가슴 저리며 한 사람을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햇살만 내렸다 가는 간이역에서 쑥부쟁이 개망초, 고무줄로 묶은 들꽃다발을 들고 기차는 가고 햇살은 뜨거운데 뿌리 없는 꽃처럼 시들어 가며 발만 동동 굴러 본 적이 있는가 구멍난 나뭇잎이 내 마음 같다 커다란 낙엽 위에 그리움을 적으면 편지에는 온통 그 사람의 이름 뿐 몸보다 먼저 마음이 스산해서 지는 해만 한사코 바라본 적이 있는가 곱은 손으로 눈을 뭉쳐 몇 번을 부숴 버리고 그래도 다시 눈을 뭉쳐 흘러내린 눈물로 얼음처럼 단단한 눈사람을 만들며 한 사람을 오래도록 기다린 적이 있는가 이 대흠 2008. 8. 1.
철길 친구야, 생각해보게나 철길 말일세 두 개의 선이 나란히 가고 있지 가끔씩 받침대를 두고 말일세 다정한 연인들 같다고나 할까 수 많은 돌들은 그들이 남긴 이야기고 말일세 그 철길 위로 열심히 달리는 기차를 생각해보게나 두 선로는 만날 수 없네 그러나 가는 길을 똑같지 어느 쪽도 기울어져서는 안되지 거리 간격이 언제나 똑같지 않았나 언제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을 보게나 친구야! 우리의 우정은 철로일세 물론 자네가 열차가 되고 싶다면 할 수 없네 그러나 열차는 한 번 지나가지만 철길을 언제나 남는 것이 아닌가? 열차가 떠나면 언제나 아쉬움만 남지 친구야, 우리의 길을 가세 철길이 놓이는 곳에는 길이 열리지 않나 용혜원 2008. 7. 15.
아주 사소한 것들 우리들의 일생은, 아침이면 눈을 뜨고 비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는 거리에서 서로 다투고 사랑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의 연속이지만 번번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아침부터 기진맥진하는 아주 사소한 부주의나.. 한 달간 책을 읽지도 않았고 또 깊은 명상에 잠기지도 않았다 해서 갑자기 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바람처럼 스쳐버리는 아주 작은 일들이 결정적인 날이 오면 그것이 구름이 되고 천둥이 되고 비가 되어 슬픔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꽃이 시듦은 그것이 금방 비가 오지 않고 뜨거운 태양에 지쳤기 때문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쌓인 그 무게를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위대한 성취를 하거나 지속시키지 못해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아름다움에서 .. 2008. 7. 7.
나는 바보라서 나는 바보라서 사람들 말을 잘 믿습니다 믿었다가 혼이 많이 나고 보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더러 바보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내 속내를 보이지 말아야지 했다가 내게 말하는 사람의 말이 정말 같아서 꽁꽁 숨겨 놓았던 것까지 다 보여주고 나면 역시 소리도 없이 비웃으며 가버리고 나는 다시 바보가 됩니다 그대로 바보로 살아도 좋은데,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 내게 와서 내 속내를 묻지 않을 테니 괜찮은데 또 다른 누군가가 와서 물을까봐 겁이 납니다 정말 내 맘을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며 나와 함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이번엔 내가 바보가 아니라고 제법 나도 똑똑해졌다고 마음에 빗장을 하나 더 질렀다가 그가 떠나갈까 두렵습니다 그가 떠나면서 나처럼 상처를 입고 나도.. 2008. 6. 30.
상처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이승하 인생이란 헐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잠깐 스쳐지나가는 빛을 바라보는 것 따뜻한 강물처럼 나를 안아줘. 더 이상 맨발로 추운 벌판을 걷고 싶지 않아 당신의 입속에서 스며나오는 치약냄새를 나는 사랑했던거야 우리 무지개빛 피라미들처럼 함께 춤을 춰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거라고 내게 얘기해 줘. (p256 못구멍> -윤대녕의 중에서 2008. 6. 30.
비로소 한사람이 비로소 한 사람이 나의 의미가 되었습니다 마른 풀잎이 흔들려서 바람을 읽어 가듯 흔들리는 내 안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한 사람이 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내 고독을 두려워하여 꽃을 곁에 두려 하였던 그 길고 외롭던 날들의 숨겨 둔 눈물마저 살피시어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 2008. 6. 14.
희망 일본 속담에 "여행은 도착하는 것보다 희망을 품고 여행하는 것이 더 낫다" 라는 말이 있다 낚시꾼의 말로 바꾸면 "고기를 잡는 것보다 희망을 품고 낚시하는 것이 더 낫다." 젊은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낚시란 바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니까 인간의 정신에서 희망은 전부라고도 할 수 있다 희망이 없으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동경이나 욕망이 없고, 다음엔 꼭 월척일 것이라는 믿음도 없다 희망이 없으면 놀라운 일도 미스터리도, 앞으로 나아가 는 것을 고민할 이유도 없다 낚시꾼은 낙천가다 뼛속까지 낙천가다 기다려도 오지 않은 입질을 낙관하다보면 희망은 점점 더 커진다 "하나도 못잡으면서 어떻게 하루종일 낚시를 할 수 있죠?" 진정한 낚시꾼이라면 이렇게 대답한다 "잠깐 뭐.. 2008.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