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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 할거야'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 중에 여우가 남긴 말... 누군가를 기다리며 행복해진다는 것.. 난 별로 경험한 적이 없었다 요즘 내 주위에 가을 타는지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도 누군가를 기다리는구나, 그거 생각보다 행복한 일 못 돼.. 이제부터라도 혼자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 " 혼자서도 행복해지는 법.. 그렇게 사는 법을 과연 나는 터득했던가? 그건 아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난 큰소리를 치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유한한 인생이 무한한 욕망을 따라가는 것은 위태롭다'..는 노자의 말대로 거저 주어진대로 욕심 안내고 살아가기로 한 것을.. 허세를 부리다보면 언젠가 정말로 마음 비울 날 오겠지 2004.9.11 2004. 11. 1.
이별... 어제 어떤 분과 마지막 이별을 하고 왔습니다 멀찌감치 지켜보기만 했지 가까이 다가서진 못했던 하관식.. 아이들의 외삼촌이었고 제게 유난히 다정했던 그분이 6년 암투병 끝에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려고 갔지만.. 정말 어색했습니다 유족의 무리에 끼어들기 거북해서 밤나무숲 그늘 아래에서 애궂은 담배만 피우다 왔지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겠더군요 하긴 10년이면 짧은 세월은 아니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실감하게 했던 하루였습니다 ..... 이별은 그렇게 오고 있었다 손등에 내리는 어스름 한 발 한 발 디뎌 길 만들던 일, 옛 일 이제 보니 그것은 길 지우는 일에 다름 아니었구나 산다는 일도 결국 살아온 길 길 지우는 일 뿐이로구나 2004.9.10 2004. 11. 1.
보고 싶다? 비오던 날.. 친구와 술을 마시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았을 무렵.. 뜬금없이 보고싶다는 말을 두번인가.. 중얼거렸다고 한다 대상도 없이 그냥 보고싶다...? 그 말을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인 친구는.. 누가 그렇게 보고 싶냐고 오늘 전화로 물어왔다 글쎄, 누가 보고 싶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취중에 절박하게 보고 싶은 상대가 내게는 없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나는 지독하게 허탈한 상태에서 어떤 이가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내가 나에게 묻는다 그러나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뼛속까지 사무치도록 간절하게 보고싶은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나의 정서가 왠지 구근이 메마른 나무같아 쓸쓸한 날이다 2004.9.4 2004. 11. 1.
친구 미국 이민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교동창이었을 뿐 아니라 더 어렸을 때부터 한 동네 살았으니 죽마고우라고도 할 수 있는 친구.. 이상하게도 고교졸업이후 그와는 연락이 끊어졌다 목사가 되어 잠시 귀국해 청담동의 모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그와 나는.. 잊고 지냈던 시절의 말투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그간의 시간에 대해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의 공백 때문인지 잠시 서먹한 시간도 있었지만 우린 금새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고.. 화제는 부모님 안부에서 친구들 얘기로 넘어갔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게 산다는 이야기... 나 역시 순조로운 인생 살진 않았지만.. 다들 왜 그렇게도 우여곡절 많은 인생들일까.. 낯선 땅에서 온갖 궂은 일을 하다 결국엔 목사의 길의 선택한 그 친구의 인생역경도 만만치 않았으.. 2004. 11. 1.
가을 문턱에서...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물론 평소에도 대부분 혼자입니다만- 찾는 곳이 있습니다 동학사 초입 박정자 삼거리에서 왼쪽 샛길로 들어가서 굽이굽이 산을 돌면 상수리나무 우거진 숲속의 음침한 그늘진 곳에 집 한채가 있습니다 계룡산을 찾는 사람들도 그냥 지나치고 마는, 소문을 통해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고 굳이 선전을 하거나 하지 않아 외부와의 적당한 거리를 둔, 농장을 겸한 음식점이지요 10여년 전에 별장으로 지었다는 이집은 손을 본 흔적 없고 대낮에도 그늘이 주는 어둠과 어떤 묘한 기류가 안개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약도를 보고도 길을 찾을 수 없는 곳, 길을 몰어볼 사람이 지나치지 않는 곳 음식도 어디서고 맛볼 수 있는 흔한 것이고 외진 곳에 자리잡은 것외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집.. 손님이 오면 받고 오지.. 2004. 11. 1.
찔레꽃(표충사) "찔레꽃" 이라는 문패가 소탈스런 삽짝문 돌담 너머 대추가 익어 가는 '찔레꽃' 밀양 표충사 가는 길에 자리잡은 국수집 그집에 들어섰을 때... 사람은 없고 낯선 사람도 반겨주는 강아지 한 마리와 툇마루 아래에서 졸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빈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당엔 주렁주렁 열매를 안고 있는 대추나무 가지들이 땅을 항해 흐르듯 한껏 휘어져 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만큼 머지않아 이 가을도 서서히 익어서 휘어지겠지요 주인이 없어 국수맛은 볼 수 없었지만 소박한 나무탁자 위에 놓인 투박한 잔을 보면서 이제 막 물들어 가는 대추를 접시 그득 담아 놓고 모차르트나 라흐마니노프가 아닌 장사익의 노래 한 소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쾌한 바람이 살 속을 파고드는, 멀리 있는 친구가 .. 2004. 11. 1.
여행 전야에... 길을 나서는 일은 늘 그렇듯 설레임반 걱정반입니다 내일 떠나면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고 또 헤매야 집으로 되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거실에 펼쳐놓은 배낭을 보면서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마냥 걷는 상상을 합니다 막상 집을 벗어나면 씩씩해지지만 아직 몸은 이곳.. 2004. 11. 1.
비..이제 그만 지루한 장마.. 비...오늘도 어제도 그제도 내일도...비 올장마는 매우 산발적이다 기습적이며 격동적이고 도발적이다 온종일 오는게 아니라 한동안 퍼부었다가 잠시 조용해지고 잠시 빛이 나는듯 하다가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다 어느 해보다 서럽게 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하루종일 구질하게 내리는 것도 아니고 가슴앓이처럼 기복이 심하다 잊을만하면 도지는 고질병처럼... 굵은 빗발이 퍼붓는 창밖을 망연히 바라보면 삼류영화의 주인공이 된듯 어쩌면 그리 처량해질까.. 아릿한 비냄새, 맨땅에 포르라니 번져가는 이끼, 마르지 않는 눅눅한 옷냄새.. 외출시 마다 없어져버린 우산들..... 아파트 화단 큰 나무 아래로 비를 피하려 왔다가 마주치자 나보다 더 놀래서 달아나던 도둑 고양이의 서늘한 눈동자.. 보랏빛으로 날이.. 2004. 11. 1.
사랑하다 죽어라 어떤 시인이 노래했던가?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또 다른 시인은 그랬던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전자의 말은 슬픔이 배어있지만 후자의 말은 축복과 저주를 담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무한정 넘치게 퍼담을 수 있는 물이 아닌 게 분명하다 목이 타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어쩌면 철저하게 비껴 가는 퍼즐게임.. 타인의 것에 침을 삼키며 광분하는 것도 사랑은 저만치 물러나 있어서 잡힐 듯 하지만 종내 잡을 수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어제 TV로 이산가족들이 수십년만의 상봉후 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붙어서 아옹다옹 티격태격하는 보통의 부부를 생각했다 아니 그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혼자가 된 이들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나는 적을 만들지 않았지만 내 의지와.. 2004.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