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114 보리수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나무 아래 길이 있을까 난 그런 것을 잊어버렸어 아니 차라리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정직하겠지 잊어버린 사람은 잃어버린 사람 잃어버린 것을 쉽게 되찾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시간 속에 종종 성냥불을 그어보지 내가 잃어버린 무슨 나무 아래 길이 혹여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혹시 장미나무 아래로 가는 길이 물푸레 나무 아래 휘여진 히아신스 꽃길이 어디 어둠의 담 저 너머 흔적 같은 향기로 날 부르러 오지 않을까 하고 ....... -김승희, '보리수 나무 아래로' 中에서 2007. 7. 10. 연꽃 불이 물 속에서도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은 연꽃을 보면 안다. 물로 타오르는 불은 차가운 불, 불은 순간으로 살지만 물은 영원을 산다. 사랑의 길이 어두워 누군가 육신을 태워 불 밝히려는 자 있거든 한 송이 연꽃을 보여 주어라. 닳아 오르는 육신과 육신이 저지르는 불이 아니라. 싸늘한 눈빛과 눈빛이 밝히는 불, 연꽃은 왜 항상 잔잔한 파문만을 수면에 그려 놓는지를. -오세영, '연꽃'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서정주 2007. 7. 4. 살구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窓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살구나무여인숙/장석남 2007. 7. 3. 능소화 이 꽃을 ‘구중궁궐의 꽃’이라 칭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 옛날 복숭아 빛 같은 뺨에 자태가 고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답니다 임금의 눈에 띄어 하룻밤 사이 빈의 자리에 앉아 궁궐의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의 처소에 한번도 찾아 오지를 않았답니다 소화가 여우같은 심성을 가졌더라면 온갖 방법을 다하여 임금을 불러들였건만 아마 그녀는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빈의 자리에 오른 여인네가 어디 한 둘이었겠습니까? 그들의 시샘과 음모로 그녀는 밀리고 밀려 궁궐의 가장 깊은 곳 까지 기거 하게 된 소화는 그런 음모를 모르는 채 마냥 임금이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다는군요 혹시나 임금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는데 그냥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싶어 담장을 서성이며 기다리고, 발.. 2007. 6. 22. 호두나무 임실 왕방지 상류마을에서 만난 호두나무 우람한 호두나무 가지마다 호두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모습이 풍요롭고 졍겨워 보였다 때론 꽃보다 아름다운게 열매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호두나무가 가장 많다는 천안 광덕산에선 수확철 청설모 한마리에 5000원의 현상금까지 걸었다고 하던데... 호두가 익는 가을엔 왕방지에나 가볼까... 물론 낚시대도 들고... 2007. 6. 21. 난 키우고 있는 몇개의 란중 가장 먼저 꽃대를 올려 개화를 시작한 이 녀석.. 우리집에 온지도 10년 넘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어김없이 꽃을 피워주고.. 꽃과 함께 그윽한 향까지 덤으로... 2007. 6. 17. 양귀비 2007. 6. 11. 개망초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 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개망초꽃/안도현 무너진 토담 한 귀퉁이, 햇빛이 빈 뜨락을 엿보는 사이 작고 흰 꽃을 흔들며 개망초떼가 온 집안을 점령한다 썩은 지붕 한구석이 무너진 외양간 비쳐드는 손바닥만한 햇빛 속에도 개망초는 송아지처럼 순한 눈을 뜨고 있.. 2007. 6. 8. 작약 미나리아재빗과의 한 속. 적작약 ,백작약 ,산작약,호작약 ,참작약 같은 식물의 총칭으로 흔히 재배하는 것을 작약 또는 단순히 함박꽃이라고도 한다 원종(原種)은 중국,몽골,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하는 적작약이다 유럽에서는 중국으로부터 도입하여 프랑스,영국 등에서 품종을 개량했는데, 이것들을 양작약이라고 한다 그 밖에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작약이라고 불리는 종이 있으며 이것의 개량종으로 키가 작은 조생종(早生種)도 있다 이들 원종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모란 등도 포함하여 넓은 종간교잡이 이루어져 여러 가지 원예품종이 만들어지고 있다 뿌리는 굵은 덩이뿌리모양이고 잎은 2,3회 겹잎이며 작은 잎은 달걀꼴로 가장자리 끝이 뾰족하다 줄기는 똑바로 서며 높이는 0.6∼1m이고 가지가 갈라져 2∼5개의 꽃이 달린다 꽃은 4월.. 2007. 5. 24. 이전 1 ··· 5 6 7 8 9 10 11 ··· 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