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 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 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개망초꽃/안도현
무너진 토담 한 귀퉁이, 햇빛이 빈 뜨락을 엿보는 사이
작고 흰 꽃을 흔들며 개망초떼가 온 집안을 점령한다 썩은 지붕 한구석이 무너진 외양간
비쳐드는 손바닥만한 햇빛 속에도 개망초는 송아지처럼 순한 눈을 뜨고 있다
개망초떼들이 방심한 채 입 벌린 빈집을 상여처럼 떠메고 일어선다
하얗게 개망초꽃 핀 묵정밭 쪽이 소란하다
혹시 집 앞길로 사람들이 흘러가다가, 잠시 멈추어 내리기라도 한다면
개망초들은 시치미를 떼고 서서, 햇빛 속에 흔들리리라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빈집은 숲에 묻히겠지
문득 개망초꽃 하나가 내 어깨에 햇빛의 따뜻한 손을 얹으려 한다
나는 완곡히 이 위안을 사양한다 내가 지금 귀기울이는 건 다른 소리이다
사람의 기운이 이제 아주 떠나려는 듯 사랑방에서 두런두런거리기도 하고
쇠죽 끓이는 냄새를 풍기기도 하고, 외양간에 쇠방울이 딸랑거리기도 하고
누군가 쟁기며 삽날이 흙과 사람과 개망초꽃더미 사이에 내쉬고 들이쉬던 숨결을
가만히 어루만져 거두어들인다
언뜻 구름의 그림자가 빈 뜨락을 스치고, 그의 헛기침 소릴 들었던가
-빈집/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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