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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112

동자꽃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내 가슴속에 이미 피어있기 때문이다. - 한상경, 나의 꽃 석죽과에 속하는 동자꽃, 꽃말은 '기다림' 동자꽃 설화 옛날 어느 암자에 스님과 동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마을에 내려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산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눈이 녹을 때까지 며칠을 기다렸다가 올라가 보니 스님을 기다리던 동자가 얼어 죽어 있었다. 스님은 동자를 고이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에 동자가 얼어 죽은 자리에서 동자의 얼굴처럼 둥글고 붉은 꽃이 피었다. 그래서 그 꽃을 동자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2017. 6. 6.
해국(海菊) 해국이 아름다운 이유 해국은 이 땅의 꽃 중에서 가장 바다 가까이 걸어간 꽃입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당당하게 꽃을 피워 올립니다. 자신의 종교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순교자처럼 해국은 땅의 끝에서 꽃의 존재를 알립니다. 해국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이웃을 위해 등불을 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극지와 오지, 세계 최고봉에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모두 바닷가에 피는 해국입니다. ‘세계는 우리가 믿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이 세상을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인간적인 생존 그 자체에 대해서는 정당.. 2016. 10. 5.
금강초롱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 작은 연가/박정만 2016. 6. 29.
벚꽃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2016. 3. 21.
동백... 낙화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 문정희 남도 해안을 따라 선홍빛 한(恨)이 점점이 펼쳐진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목을 꺾기 위해 녹색 잎 사이로 피를 토하듯 솟아오르는 꽃봉오리들. 늙고 시들기 전에 정점에서 소멸하려는 그 처절함을 누가 흉내낼 수 있겠는가. 단 한번뿐인 생을 누더기처럼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겐 그 거침없는 낙화가 부럽고 두렵다... 2016. 1. 1.
전나무 죽어서 자신의 존재 양식을 선택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존재로 재생하기를 원할 것인가? 나는 어떤가? 나는 바위나 돌과 같이 비생명체, 즉 그냥 물질이나 물고기나 새, 동물보다는 풀과 나무와 같이 식물체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한 비생명체가 에메랄드나 다이아몬드 건, 나는 아무리 괴롭더라도 죽어 있음보다는 살아 있음이 아름답고 생생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존재가 인간들에 의해서 아무리 높이 평가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동물보다는 식물로 존재하고 싶다. 바위도 좋고, 풀도 좋고, 물고기도 좋고, 날짐승도 좋고, 네 발 달린 야수들도 좋지만, 나는 역시 나무를 더 좋아한다. 동물보다 나무를 더 좋아하는 것은 동물들이 한편으로 풀이나 나뭇잎과 같은 식물들 혹은 다른 동물들을 잡아.. 2015. 11. 8.
구절초 풀꽃만큼 제 하루를 사랑하는 것은 없다 얼만큼 그리움에 목말랐으면 한 번 부를 때마다 한 송이 꽃이 필까 한 송이 꽃이 피어 들판의 주인이 될까 어디에 닿아도 푸른 물이 드는 나무의 생애처럼 아무리 쌓아 올려도 무겁지 않은 불덩이인 사랑 안 보이는 나라에도 사람이 살고 안 들리는 곳에서도 새가 운다고 아직 노래가 되지 않은 마음들이 살을 깁지만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느냐고 보석이 된 상처들은 근심의 거미줄을 깔고 앉아 노래한다 왜 흐르냐고 물으면 강물은 대답하지 않고 산은 침묵의 흰새를 들 쪽으로 날려 보낸다 어떤 노여움도 어떤 아픔도 마침내 생의 향기가 되는 근심과 고통 사이 여기에 우리 머물며 -여기에 우리 머물며/이 기철 ♬ 먼산 - 범능스님 2015. 9. 4.
살구 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에 막 비 듣는 것 보네 신록에 빗방울이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놓은 것 같은 손톱을 깎네 감물 들듯 번져온 것을 보아도 좋을 일 햇솜 같았던 아이가 예처럼 손이 굵어지는 동안 마치 큰 징이 한번 그러나 오래 울렸다고나 할까 내가 만질 수 없었던 것들 앞으로도 내가 만질 수 없을 것들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이 사이 이 사이를 오로지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시간의 혀끝에서 뭉긋이 느껴지는 슬프도록 이상한 이 맛을 ㅡ 문태준, 전문 Loreena McKennitt - Down by the Sally Gardens 2015. 1. 23.
앵두 옛 노트에서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 장석남 시집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에서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되었더라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죽을 힘 다해 노력해서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을 단속하게 되었다. 달아나려는 감정의 가닥들을 한 곳에 쑤셔 넣은 후, 도망가지 못하.. 2014. 6.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