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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담양, 관방천변 국수집들

by 류.. 2007. 8. 5.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 

 

 

 

 

 

▲ 아름드리 나무들이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담양 관방천변. 숲길 따라 쭉 이어진

대나무 평상
위에서 청량한 바람 맞으며 ‘호로록 후루룩’ 국수 먹는 맛!

 

 



국수는 예나 지금이나 잔칫집 음식으로 꼽힌다. 하얗고 긴 면발에서 짐작되듯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례음식이다. 결혼식이나 회갑 잔치가 열리는 집 마당, 햇볕 가리개 천막 아래 둘러앉아 국수를 먹는 모습은 정겨운 우리네 풍속이었다.


 ‘후로록 후루룩’ ‘쏘옥 쏘옥’
국수 빠는 소리, 국물 마시는 소리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여름철이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담양 관방천변이다. 숲길 따라 쭉 이어진 대나무 평상 위에서 하얀 면발을 들어올리는 사람들 모습은 이제 담양의 진풍경이 되었다.

관방천 물길과 나란히 흐르는 아름다운 숲길의 풍광도 일품이지만, 오로지 국수 한 그릇을 갈망하여 입소문을 타고 먼 길을 달려온 외지인들도 많다. 수백 년 풍상을 묵묵히 견뎌낸 고목들이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대숲과 강물을 적신 청량한 바람 솔솔 불어온다. 자연이 내어놓은 이 풍성한 잔칫상에 담양 사람들은 그저 조촐하나 정이 듬뿍 담긴 국수를 올려놓은 셈이다

 

오로지 국수 한 그릇 갈망하여 먼 길 달려온 외지인들도 많아
본래 전국에서 가장 번성한 죽물시장이었던 천변에서 장꾼들의 끼니이자 요기였던 국수는 장터가 현대화되면서 옮겨가자 둑방 위로 올라왔다. 오일장 한 켠에서 잰 손으로 훌렁훌렁 국수를 말아내던 천막집이 튼튼한 지붕을 인 붙박이 식당으로 변모한 셈이다. 


 “40년 되었습니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27년, 자리를 옮겨 8년을 해오던 것을 제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맛을 지키는 게 가업이지요.”
죽물시장 국수의 맥을 이어온 <진우네>의 이진우(44)씨는 최상품 멸치를 맛의 비결로 꼽는다.

 진우네가 터를 닦은 숲길에 5년 전부터 하나둘 국수집이 들어섰다. <시장국수> <대나무국수> <담양국수> <강변뼈다귀탕>이 듬성듬성 문을 열었고, 관방천 하류 뚝 떨어져 <뚝방국수>도 간판을 달았다.





▲ 맛있는 국수가 여기 있소! 사람마다 취향 다르고 미각 또한 제각각이듯 주인마다 내세우는
특장에 따라 관방천 국수는 맛도 모양도 다양하다.

 

 


음식이란 솜씨 이전에 재료와 정성인지라 국수 하나에 들이는 여섯 집의 한결같은 공력으로 관방천변 국수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오랜 전통의 맛을 보존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손님의 기호에 맞추어 내려는 각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곳 물국수는 주로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나름의 고명과 양념장을 얹어 내는 보편적이고 소박한 것이다. 면발은 중면을 써서 소면에 비해 쫄깃하고 무겁게 씹힌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잔치국수보다는 장터국수라 하겠다.

“옛날엔 국수를 집에서 삶아서 시장으로 내왔지라. 잘 안 퍼지지기도 하고 허기진 장꾼들 든든한 끼니로는 중면이 낫지라. 우리 집 찬거리는 밭에서 직접 키운 순 담양 토종이요.”
시장국수 김영자(68)씨는 장터에서 국수를 말아냈던 기억을 떠올리는 연장자에 속한다.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대나무잎, 약재, 녹차가루 등을 넣어 삶아낸 계란을 까먹는 맛도 특별하다. 손을 데일 듯 뜨거운 계란껍질을 호호 불어가며 벗겨내면 진한 갈색 속살이 드러난다. 관방천 삶은 계란 특유의 태깔이다.

비빔국수나 여름철 계절식인 콩물국수도 엇비슷하나 집집이 즐겨 쓰는 재료와 손맛에 따라 다양한 맛의 경연을 벌인다. 국수 마니아라면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일삼아 차례차례 순례를 해봄직하다.

“우리 집 국물은 맑다. 오래 우려내기보다는 바로바로 끓여내서 깔끔하다. 고명으로 애호박을 쓰고, 간장 양념에 부추를 많이 사용하는 게 다르다.” -담양국수 이귀례(49)씨
“할머니의 솜씨를 손녀가 따라 한다. 잘 익은 열무를 듬뿍 넣은 비빔국수가 다른 집과 차별적이다. 직접 담근 양파김치도 우리 집 별미다.” -대나무국수 김현자(47)씨

“누가 가르쳐 줬다기보다는 혼자서 익히고 개발해낸 맛이다. 면발은 여러 개를 먹어보고 중면 가운데 약간 가는 것을 골라서 더 부드럽다.” -뚝방국수 박현정(39)씨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미각 또한 제각각이듯이 주인마다 내세우는 특장에 따라 관방천 국수 맛은 그게 그거인 듯 하면서도 미묘한 맛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진우네가 멸치를 오래 우려낸다면 담양국수는 멸치를 곧바로 끓여내고, 시장국수와 대나무국수는 멸치와 다시마를 함께 우려낸다. 깔깔하거나 연하고 부드럽거나 뒤끝이 개운한 정도의 편차가 드러난다.
밑반찬으로는 대체로 매운 콩나물무침, 묵은지, 단무지무침을 내놓는데 뚝방국수 콩나물은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 그러나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국물의 비결과 밀가루 냄새 없이 면발을 삶아 소쿠리에 척척 올려놓는 솜씨는 공통의 노하우가 되었다.


주인마다 내세우는 특장에 따라 미묘한 맛의 차이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음식을 두고 원조 논쟁이 볼썽사납고 은근슬쩍 이웃집을 깎아 내리기 일쑤지만 이곳 국수집 주인들은 남의 음식 타박도 않지만 제것 자랑에도 말을 아낀다. 적어도 국수에 관한 한 장인의 면모가 느껴지는 관방천에서 섣부른 품평일랑 아예 내려놓는 게 상책이리라.
 “이 양반들은 보기만 해도 면발 익는 정도를 알아 불어요. 국물 내는 법하며 삶는 요령하며 한 가락씩 비법을 갖고 있제라. 그란께 국수라믄 관방천이 전국에서 제일이지라.”

이 집 저 집 마실 다니듯 국수를 즐긴다는 담양 토박이 김종관(43)씨는 자기 일처럼 국수자랑을 술술 쏟아낸다.
싸고 맛있고 인정 푸진 관방천변에선 손해볼 일은 없다. 혹여 국수가 입에 맞지 않았다 해도 장엄한 숲길, 선선한 대숲바람, 시원한 강물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고 남을 터이다. 게다가 하얀 실타래처럼 길다랗고 가지런한 면발을 삼키며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면 더 무얼 바라겠는가.

국수 한 그릇에 2500원, 삶은 계란은 4개에 1000원이다. 매달 15일 딱 하루 휴무인데 휴일과 겹치면 이어지는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영업시간은 대개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30분까지지만 몇 집은 술꾼들 편의를 위해 밤늦도록 기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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