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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40년 경력 화가가 운영하는 칼국수 집- 松香池(안성고삼저수지)

by 류.. 2007. 8. 5.

 

 

▲ 풍경이 걸려 있는 게 식당이라기보다는 조용한 산사같다.
식당이라기보다는 조용한 암자라고 할까. 식당 처마 끝에 있는 풍경은 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며 존재를 알린다.

한눈에 봐도 시골 마을 흙집이다. 뒤로는 초록의 산이 진을 치고 있고, 앞으로는 고삼호수의 여름 향취가 물씬 풍겨져 온다. 여기 가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에 벌써 배가 불러온다.

입구에서 간판을 찾으려면 여간한 주의력이 아니면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칼국수'라는 철 조각이 눈에 띈다. 그래서 인근 주민들에겐 '칼국수 집'이라고 통한다. 그래서 그런지 식당 간판이라기보다는 거의 문패에 가깝다.

이렇게 문패만한 간판이 달린 데는 한미진 대표의 사고방식이 묻어나 있다. 그녀는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것도 원치 않는다. 혼자서 감당할 만큼, 또는 자신이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오기를 바라기에 간판도 거의 보이지 않게 달았다. 알음알음 오는 손님, 입소문 듣고 오는 손님만 받겠다는 생각이다.

찾아낸 주먹크기만한 간판엔 '송향지', 그러니까 '솔향기가 풍겨 나오는 호수'라는 뜻의 식당이름이 적혀있다. 고삼호수(경기 안성 고삼면)를 말함이다. 이렇게 식당 이름을 직접 '송향지'라고 지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 칼국수라고 적혀있지만, 정작 본 간판은 조그만 문패만 한데다가 '칼국수'라는 글귀에 가려 있다.
이 식당의 대표이자 일꾼인 한미진 대표는 12년 전 우연한 기회에 얼어붙은 겨울 고삼호수를 보고 한눈에 반해 이 마을로 이사를 온 것. 한 가정이 이사하는 동기치고는 수상한(?) 것은 모두 다 한 대표의 내력 때문이다.

그는 20세부터 시작한 '그림그리기'와 동거해 온 지 벌써 40년 세월이나 지나버린 화가이다. 그러니까 지난해부터 시작한 이곳 칼국수 식당은 평생 처음으로 하는 돈 버는 일반 직업인 셈이다. 물론 화가를 해도 돈은 벌지만, 식당 노동과 그림 작업은 아무래도 다르지 않은가.

"요즘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제가 직접 노동해서 돈을 벌어 나의 잡비를 버는 것과 틈틈이 책보고 영화 보는 시간이 있어서 말이죠. 적게 벌고 적게 쓰긴 하지만, 그래도 돈을 벌면 여행 경비로 쓰기도 하죠."

▲ 한참 신나게 인터뷰 중이다. 한미진 대표는 아주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인터뷰가 서로 재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거주할 집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며 잡비도 버는 곳이 바로 '송향지'다. 그래서 그녀는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법이 없다. 오전에 식당 준비를 해 놓고 나면 오후엔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손님이 안 오면 책 봐서 좋고, 손님이 오면 돈 벌어서 좋다는 심사이다.

그녀가 식당을 하면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비결은 따로 있다. 될 수 있는 대로 예약 손님을 받는다. 저녁 8시면 문을 닫는 것으로 한다. 금요일 미술 수업(안성 '달팽이' 대안학교 에 가서 성인반 미술 수업을 하는 날)이 있는 날은 식당을 열지 않는다. 혹 미술수업이 쉬는 날이라고 해도 그날만큼은 미련 없이 문을 닫는다.

조금 번 돈을 노자 삼아 20일 정도 세계여행을 갔다 오는 것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실행에 옮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데는 도가 튼 것이다. 아니 적게 벌고 많이 누리고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진작부터 알고 있는 게다.

▲ 화가인 한미진 대표가 아끼는 작품들 중 하나다.
이런 칼국수 집이 탄생한 것은 먹기도 좋아하고 음식 만들기도 좋아하는 그녀의 성품이 한몫했던 셈이다. 그래서 그녀의 음식 맛은 집에서 해먹던 옛날 할머니들 손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에 있다.

10명 넘는 시집 대식구들을 해 먹였던 옛 경험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칼국수를 싫어하는 손님을 위해서 열무보리 비빔밥을 여유분으로 준비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만남이라 할 것이다.

▲ 한미진 대표는 섬세한 화가이지만 성격은 시원시원해서 호탕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어떤 마을/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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