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短想

감나무 아래에 서면...

by 류.. 2006. 7. 23.

 

 

 

 


지루하게 계속되던 장마가 지나가고..
모처럼  들꽃이 어지럽게 핀 산길을 걸어봅니다
밤나무숲 옆 외롭게 홀로 선 감나무 아래..
풋감이 떨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홍시가 떨어짐과는 또 다른 애달픔이 한자락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감나무가 풋감을 떨구는 것은 실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라지요

버리면 살고 끌어안으면 죽는다..


애써 조랑조랑 맺은 열매를 다 쓸어안을 수
없음을 나무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숙한 과일로 숙성하지 못하기에
함께 매달려 있으면 나무만 상하기에
한창 성장하는 풋감들을 하나 둘씩
눈물을 머금고 맨땅에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감나무 아래에 서면...
빈손인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닫습니다

.....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 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오히려 너를 시들게 할 뿐,
너는 그저 논두렁 길가에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들꽃처럼 소리 소문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었다 지면 그만이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살아있다
그것 만으로도 아직 살 수 있고
나에게 허용된 시간을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홀씨들 날릴 강한 바람을
아직 기다려야 한다


-서정윤, '들꽃'-

 

'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곱시  (0) 2006.08.20
풍경 하나  (0) 2006.08.05
길, 나무다리  (0) 2006.07.18
살구  (0) 2006.07.06
빗소리  (0) 2006.06.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