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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빗소리

by 류.. 2006. 6. 25.

 

 

 

 

 

 

        기다리던 비가 옵니다

        이틀동안 좀 무리한 탓으로 오늘 아침은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서 게으름을 누립니다 
         

         

        풀풀 먼지 일던 마음을 빗소리가 적셔주고..

        여러가지 상념에 잠기게 합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물소리 없어 허전했던 계곡과 강에서 이젠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고 강 하류에서부터

        살찐 물고기들이 상류로 거슬러오를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빗소리가 반갑게 들립니다

         

        새벽,  우의를 입고 뒷산에 오르다가

        빗물에 씻긴 샛노란 살구가 바닥에 떨어진 것을 봤습니다

        살구나무 주위엔 달맞이꽃이 빗물에 얼굴을 씻고  청초함을 자랑합니다

        두가지 종류가 다른 노란빛이 누군가를 떠오르게 합니다

         

         

        차 한 잔을 하고 성당에 다녀와서

        책이나 좀 읽어야겠구나 생각하다가 마음을 바꿉니다

        오늘은 잠시 혼자 가 볼 곳이 있습니다

         

        비 오면 꼭 가리라 마음먹고 미루어왔던 곳..

        그곳에서 불현듯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능성이 전무한 일에 나를 이끄는 당신 때문에..

        난 그곳에 가게 될겁니다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窓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살구나무여인숙/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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