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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살구

by 류.. 2006. 7. 6.

며칠 과음한 탓인지

어젠 종일 빗소리나 들으며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생일 맞은 고교 후배의 전화를 받고 

산성동 뒷골목 작은 중국집에서 한잔 했습니다

이과두주 한병에 몸이 금방 나른해오더군요

일차로는 헤어지기 아쉬워 호프 두잔을 더 마시고 일어섰는데.. 그땐 이미

노래방 가자는 후배의 제의를 받아줄 수 없을 정도로 난 취해 있었지요

비도 내리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 몸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몸이 지치니 마음도 따라 지치는 건 당연하겠지요

 

 

아파트 단지안에 있는 몇그루 살구나무들..

바람이 나무를 흔들고 지날 때마다

후두둑  제 몸의 일부인 살구를 아래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제 몸을 스스로 아래로 밀어내는 고통이 오죽할까요?

가만히 보니 살구는 그 높은 곳에서 혼신의 힘으로 뛰어내려

주인께 선물을 바치는 충직한 종 같습니다  

몸이 으깨지는 고통이야 당연히 각오하고 뛰어내렸을 터인데

그럼에도 살구는 아무런 생색이나 변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어줍잖은 주인에게 제 몸을 송두리째 바칠 기쁨으로

얼굴빛이 노랗게 충만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얼마나 높은 곳에서 으깨지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며

뛰어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 봅니다

떨어진 살구를 보면서.....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도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쨍한 사랑노래/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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