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참 빠르다
더위가 시작되었구나 하면서 헐떡거리다보니 어느새 장마다
간밤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술에 절은 몸을 방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솜방망이, 그것도 잔뜩 물먹은 솜방망이 같은 몸으로..
의식이 명료하고 몸이 정상 아닐 때,
나는 자주 숨쉬는 무생물을 떠올린다
정지되지 않은 정지 같은 그런...
마구 쏟아지는 비.. 비는 고맙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모두 살려내니까
마당 있는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면 바로 이렇게 비오는 날이다
빗소리는 소리 자체가 라이브하지도 않고
매우 몽환적이면서도 추상적이다
더욱이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는 반으로 줄어
가랑비가 내릴 땐 감지조차 어렵고
산발적이고도 집중적일 때만 느껴지니 불만일 수밖에,
그러나 더러 비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생은 따뜻해지지 않던가
그래서.. 난
이른 새벽 비 쏟아지는 들판으로 마구 뛰쳐나가고 싶었다
누군가 반문할 지도 모른다
혼자 맞는 비가 얼마나 영혼을 쓸쓸하게 하는지 알기냐 하냐고?
물론 동감이다 동감이고 말고, 그러나
이제 자유가 아닌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이상
연민은 한낮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연민 없는 생이 어디 있겠냐 마는,
나는..
칼로 상처의 독을 잘라내듯
연민을 내 마음에서 도려내고 싶을 때가 있다
200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