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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지리산 아래 첫 동네 오봉마을

by 류.. 2005. 6. 24.

 

 

    하늘은 자그맣고 둥글다. 적어도 지리산 아래 첫 동네인 오봉마을에서는 그렇다. 경남 산청군 금서면 오봉리. 산 깊고 물 맑은 산청에서도 대표적인 오지로 꼽히는 산골. 마을을 향해 사방에서 뻗어내린 다섯 산봉우리가 만든 깔대기 모양의 분지. 평지라곤 찾기 힘든 해발 500~600m에 숨바꼭질하듯 오봉마을이 숨어있다.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장이라도 볼라치면 새벽 먼동에 나가 별을 보고 돌아왔다는 오지. 지금이야 계곡을 따라 시멘트길이 났고,전기도 들어와 세상과 소통하긴 하지만. 그래도 휴대폰은 무용지물이고,인터넷은 꿈도 못꾼다. 둘은 마을의 최대 현안과제. 몇번이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단다.

     

    오봉마을의 시계는 바쁘게만 돌아가는 도시의 시계와 다르게 흘러간다. 12가구 20명이 사는 오봉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순환리듬에 맞춰산다. 해 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먹고. 그러다 서늘한 나무 그늘 밑에서 풍욕을 즐기고,얼음처럼 찬 계곡에서 탁족을 한다. 자유인이자 자연인이다.

     

    여기선 급한 일이 없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가끔 연도도 헷갈릴 때가 있어요." 마을 이장인 민대호(46)씨의 원두막에 누우면 정말 자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집채만한 바위 위에 얼기설기 엮은 원두막에서 보이는 풍경은 온통 초록빛을 머금은 산이다. 윙윙거리는 벌소리와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유난히 크게 들린다. 그런데 도시의 시계에 익숙해선지 이런 환경이 왠지 불안하다.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갑자기 자연 속으로 들어와 문명의 금단현상이 생긴 게다.

     

    "사람이 산병이 들면 나가기 싫어요. 도시에 가면 목이 갑갑해서 못살아요." 민 이장은 "돈을 억만금 준다해도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여기만큼 물좋고 공기좋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오봉마을은 농사지을 땅이 없어 절로 청정지역이 됐다. 사람들은 지리산에 기대 산다. 고로쇠물,산나물,토종꿀,흑염소…. 토박이는 이장과 여든이 넘은 할머니(이이순·81) 한 분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년 전후로 요양을 위해,마을에 끌려 이곳으로 들어왔다. 산골마을에 어울리지 않은 세련된 집들이 몇 채 보이는 것도 그때문이다.

     

    2개월만에 뚝딱 만들었다는 이장 집 안방은 군불을 지펴놓아 뜨끈했다. 황토를 바르고 대나무로 마감을 해 자연을 끌어들인 집이다. 방안에는 지난 가을 산에서 채취한 약초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당귀,오가피,땅두릅,거름나무,오미자,웅지…. 대나무를 가로 매단 옷걸이도 운치가 있다. 부엌의 물은 내 틀어놓고 산다. 계곡의 물이 잠깐 들렀다가는 것이니까.

     

    해질 무렵 민 이장이 친구 염소막으로 안내했다. 마을 초입의 화림사까지 내려가 자그마한 고개를 한번 넘은 곳에 제법 넓은 평지가 펼쳐진 곳이다. "들어가!" 주인의 말을 신기하게 알아듣고 흑염소들이 염소막으로 들어간다. 딱딱딱딱…. 날카로운 소리가 숲을 울린다. "요즘들어 딱따구리들이 많아졌어요." 민 이장처럼 머리를 어깨너머까지 기른 최종식(46)씨가 대수롭지 않다는듯 받아넘긴다. 염소막 바로 아래에 있는 외딴집은 지난 태풍에 반파돼 휑했다.

     

    부산서 대학졸업하고 스물아홉 청춘때부터 산에서 만난 부인(박찬재·41)과 함께 신혼살림을 차렸다는 곳. 전기도 없어 촛불 켜고 알콩달콩 살던 곳이다. 오봉마을의 유일한 초등학생인 병윤(7)이를 낳은 뒤 2년동안 혼자서 집을 지어 오봉마을 안으로 이사를 했단다.

     

    내친김에 저녁은 최씨집 신세를 졌다. "안개가 낀 날은 어린애 만한 도깨비불이 막 다니는 거야." 도깨비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이 마을의 자랑인 토종꿀을 거쳐 곶감에 이르고,그때마다 상에는 맛보라며 그런 음식들이 나왔다.

     

    이야기 꾸러미 속에서 옛날에 대한 그리움도 묻어났다. "전기도 없이 살던 그때가 훨씬 풍족했다."는 말. 문명과 가까워질수록 채워야 하는 욕심이 많아지는 건 오지마을이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문득 시계를 보니 자정을 넘었다. 산보다도 산을 닮은 사람들이 있어 오봉마을은 다시 가고픈 곳이다. 문의 민대호 이장(055-973-4658).

     

    오지체험여행]오봉마을 여행수첩
    오봉마을로 가려면 대전~통영간 고속국도 생초IC에서 내리는 게 가깝다. 톨게이트에서 나오자마자 화계리쪽으로 좌회전. 화계에서 경호중·고등학교를 지나 방곡리 추모공원 이정표를 따라 방곡리까지 온다. 방곡리 추모공원을 지나 가현교 갈림길에서 화림사·오봉마을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계곡으로 올라가면 오봉마을에 이른다. 톨게이트에서 마을까지 30분.

    대중교통편은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산청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오전 5시40분부터 오후 7시41분까지 30~40분 간격 운행. 9천800원. 2시간30분 소요. 산청(055-973-5191)에서 방곡리행 버스는 오전 6시30분,8시20분,12시20분,오후 5시20분. 2천원. 30분 소요. 방곡리에서 1시간쯤 걸어가면 오봉마을에 닿는다.

    오봉의 아랫마을인 방곡리에는 산청·함양사건 합동묘역 추모공원이 있다. 산청·함양사건은 1951년 국군이 공비토벌 명목으로 산청 방곡마을 등 4개 마을 주민 705명을 학살한 사건.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을 달래는 추모공원이다. 높이 22m의 위령탑과 희생자 묘역 등이 있다.

    전구형왕릉도 인근에 있다. 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그래서 전(傳)자가 붙었다. 돌로 7층의 거대한 단을 쌓고 주변에는 담을 둘렀다.

     

    [오지체험여행]오봉마을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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