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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양수리 가는 길

by 류.. 2005. 5. 31.

 




       
    ♣ 호젓하고 여유로운 양평 남한강 드라이브

    여행이란 좋은 추억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혼자이든, 둘이든, 아니면 가까운 사람들이랑
    같이 하든 모두다 좋은 추억을 하나씩 늘려가는 것이다.
    아직은 이른 가을,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추억을 만들러 드라이브를 떠나보자.
    가을 단풍이 한창일때의 드라이브도 매력적이지만  아직은 푸르른 녹음이 우릴 반길때 길을 떠나보는
    것도 좋다.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양평은 이런점에서 여러모로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곳이다.

    푸른산,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 이름난 양평은 많은 문화재와 유적지를 가지고 있으며, 문화와 예술
    의 고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여기다 남한강과 북한강에서 즐기는 다양한 레포츠는 양평을 두배로
    즐기게 한다.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너무 고요하고 한적하여,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관람하러 올까 싶
    은 곳곳마다에 특색있는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

    ▶ 남한강 드라이브 코스
      팔당댐 - 다산 정약용 유적지 - 남양주 종합촬영소 -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 양평가는 길의 이색 카페들 - 보릿고개 마을 - 용문사 - 남한강 양평 카페촌 - 광주.퇴촌 맛집들 - 팔당댐

    먼저 팔당대교를 지나서 다산 유적지에 들렀다.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 유적지는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 생가인 여유당, 다산초당, 선생의 묘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이고 과학자이며 예술가이도 한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시대를 초월한 스승이자 백성들과 삶을 같이 한 사람이다. 한걸음이면 뛰어 넘을수 있을것 같은 여유당과 초당의 낮은 담장에는 허물없이 백성들과 기쁨과 아픔을 함께 하고자 했던 다산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다. 18년이란 유배생활속에서도 민생을 위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권에 이르는  귀중한 저서를 남긴 선생은 그 시대의 참된 선비의 한분이셨으며 지금 이 시대에도 그의 선비 정신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매년 10월이면 다산문화제가 열린다.

    능내리 길을 따라 10분정도 달리면 남양주 종합 촬영소가 있다. 영화를 찍는 작업부터 셋트장, 소품에 이르기까지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영화속 환상의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관람순서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었던 판문점 - 취화선을 찍었던 민속마을 - 전통한옥 - 영상지원관 - 시네극장순으로 둘러보는 것이 좋다. 전체 관람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이며, 촬영현장은 야외세트 촬영만 공개된다.  셋트장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영화의 장면장면들을 추억하다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본격적으로 남한강 드라이브를 나서면 호젓한 양평 드라이브 길은 서울에서 한시간 정도면 닿을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양평 남한강 드라이브 코스는 굳이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유명하고 많이 알려진 코스.
    서울에서 88고속도로를 타고 강일 IC를 지나 미사리로 이어지는 이 길은 남한강 강변길 따라 쭈욱 이어져 충북 단양까지 이어진다.

    태백산을 발원으로 하는 남한강과 금강산을 발원으로 하는 북한강이 만나는 곳 두물머리. 강변북로나 88고속도로를 타고 양평쪽으로 쭉 가다가 6번 국도로 갈아타고  양수대교를 건너서 양수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두물머리 마을로 들어선다. 두물머리로 들어가는 길은 마땅한 이정표가 되어있지 않은데, 마을에서 계속 직진하다가 막다른 골목길 10m전 "한성상회" 못 미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된다.
    수령이 400년 된 장대한 느티나무는 그 잎의 푸르름으로 주변을 압도하며 서 있다. 마치 한그루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그루의 느티나무가 우산형의 나무 모양을 하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 나무벤치에 앉으면 사방으로 둘러쳐진 강과 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시원하다. 가슴이 확 트인다. 햇빛에 출렁이는 금빛 물결, 파노라마처럼 길게 늘어선 강과 산, 물 위에 떠있는 황포돛단배가 고요한 가운데 운치를 더해주며 볼수록 정감을 느끼게 한다.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이 웨딩촬영을 하느라 분주한 움직임 속에 입가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른아침, 물안개에 쌓인 두물머리는 신선이 노니는 듯한 환상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두물머리를 나와 다시 6번 국도를 이용 양평으로 가는길은 남한강변을 끼고 강 주변으로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를 연상케하는 풍차카페, 비행기 카페, 기차 카페 등 예쁜 찻집들과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양평을 지나 용문면 연수리에 위치한 보릿고개마을은 경기도 슬로푸드 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양평읍에서 홍천방향으로 가다 용문면사무소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는데, 길은 새로 포장해 여느 드라이브코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전면에 용문산이 한 눈에 펼쳐진다.  
    보리밥, 쑥개떡, 보리개떡, 감자범벅, 산나물죽 등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쑥개떡, 보리개떡은 직접만들며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단체로 미리 예약시에만 체험이 가능하므로 미리 연수1리 이장님이나 부녀회장님에게 전화로 체험일정과 비용 등을 문의하는 것이 좋다.
    (문의:연수1리 김지용 이장님 017-295-4075, 부녀회장님 017-703-4070)  

    보릿고개 마을을 들린 후 내쳐 수령이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로 유명한 용문사에도 들려보자. 용문사 올라가는 입구에 장대하게 서 있는 이 은행나무는  나이 1,100년, 높이 60m, 둘레가 14m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절 마당 한켠에서는 연못에 동전을 던지며 한 가족이 소원을 빌고 있었다. 용문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2km 올라가면 산 중턱에 용의 뿔을 닮은 용각바위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1km쯤 더 올라가면 대형바위, 마당바위가 있다. 용문산 산행 후 입구에서 산채백반, 더덕구이, 묵무침, 더덕 막걸리 등으로 땀을 식히며 고단한 여정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 또한 여행의 묘미다. 용문산 관광지내에는 놀이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1일 가족 나들이 코스로 추천할 만 하다.

    돌아오는 길은 양평대교를 건너서 88번 지방도를 타고 광주.퇴촌으로 향하는 강변길을 이용한다. 도로를 따라 쭈욱 무궁화꽃길이 이어져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들어선 향토색 짙은 독특한 맛 집들과 카페들이 서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퇴촌을 지나 45번 국도를 만나면 팔당댐으로 되돌아가는 길이다. 팔당댐앞은 댐을 건너지 않고 미사리로 곧장 갈 수 있는 도로가 공사중인데 공사가 완공되면 또 다른 남한강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날 것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이포대교까지도 아주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정보출처: 한국관광공사 관광정보팀 정지현  

    당일코스나 일박 코스로 정약용 묘-양수리-영화촬영소-새터-대성리-청평-양수리 카페촌을 돌 수 있다. 팔당대교를 지나 팔당댐으로 들어설 때 2차선 도로를 타고 팔당댐을 지나 10분 정도 가면 교차로가 있다. 여기서 왼쪽이 양수리, 오른쪽이 정약용 묘로 가는 길이다.  
    다산 생가와 위쪽에 묘를 보고 나면 5분 거리에 팔당호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여기에서 양수대교를 건너 양수리로 간다. 다리를 건너면 작은 마을이 나오는 데 여기가 兩水里다. 두물머리가가 볼만하다. 도중에 갈대 숲이 강바람에 출렁이는 모습도 놓치기 아깝다. 청평 방향으로 가는 길에 서울 종합 촬영소를 들러본다. 다시 길을 잡아 청평으로 향하면 도중에 새터가 나온다. 양수리에서 15km쯤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새터 유원지'에는 강 하류 쪽으로 강변을 따라 한적한 산책로가 이어져 있어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기에 알맞다.  
    새터까지는 카페와 러브호텔들이 많고 새터 건널목 부근에는 민박집이 많고 대성리로 접어들면 대학생들의 MT장소가 나타난다. 더 가면 청평댐. 여름이면 수상 스포츠를 즐기고 봄가을에는 연인들의 배타는 모습이 한가로우며 청평호 주위에는 조용한 카페들이 있다. 여기에서 양쪽 강변도로를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 양수리 카페촌으로 간다.  
    서종 카페촌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곳은 카페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 자연과 문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남한강 드라이브 코스
    팔당댐 - 다산 정약용 유적지 - 남양주 종합촬영소 -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 양평가는 길의 이색 카페들 - 보릿고개 마을 - 용문사 - 남한강 양평 카페촌 - 광주.퇴촌 맛집들 - 팔당댐
     
     
     



     

     

     

    김인숙 [양수리 가는 길]

     

     

    강 사이에 두 개의 길이 흐른다. 저 멀리 강원도에서부터 오래도록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흐르지 않는 듯이 조용히 걸음을 옮기는 북한강, 그리고

    그 사이로 굽이굽이 뻗어가는 두 개의 길.

    사람들은 그 두 개의 길을 합쳐 마음 편하게 ‘양수리 가는 길’이라고 부른다.

    양수리 가는 길에 무엇이 있는가. 소설가 김인숙은 그 길 속에서 마침내 ‘물안개’를 찾아내고, 거기에 망설임 없이 제목을 붙인다.

    <양수리 가는 길>이라고.

    그러므로 소설 <양수리 가는 길>을 읽는 것은 물안개의 의미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안개, 그것은 곧 물안개라는 이름의 환상과 같고, 우리는 거기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은 지 오래 됐다. 환상적인 사랑이라고 이름하면 더욱 좋을, 그런 물안개.

    김인숙의 <양수리 가는 길>은 그러나 환상적인 사랑의 물안개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양수리 가는 길>에는 한 남자가 여행길에 나섰다가 문득 졸음에서 깨어났을 때 눈에 잡혀들었던 물안개의 모습을 내내 그리워하는 마음속 풍경을 보여

    줄 뿐이다. 그러므로 작품 속에서의 물안개는 한 인간에게 다가온 안개, 즉 장애물 같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그 한 남자는 지금 면허시험장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 아내를 기다리는 중이다. 면허 시험에 합격하면 자동차를 아내에게 넘겨주어야 할 입장에 있는 그는,

    자신의 자동차를 몰고 양수리에 가고 싶은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절망스러워한다.

    그리고 2, 3 개월 후에는 동남아의 오지로 3 년 동안 파견 근무를 나가도록 발령받은 사실을 아내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해외 근무가 선호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거니와 그가 발령받은 곳은 천장에 도마뱀이 기어다니고, 고깃간에는 냉장고조차 없고, 용변 뒤에

    휴지를 쓰지 않는 나라이며 그곳에서 10 개월 동안 근무했던 동료가 걸레조각처럼 말라비틀어진 상태로 귀국한 ‘사람 못 살’ 나라인 것이다.

     

     

     

     

    아내는 결국 첫번째 면허 시험에서 보란 듯이 합격을 하고, 그는 끝내 양수리로 드라이브를 가지 못하게 됐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그에게 흘러가는

    풍경은 꿈이 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는 아내와 함께 인천의 월미도를 향한다. 양수리와는 반대의 길, 그 길을 가는 내내 아내와 살림을 차리고, 결혼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꿈 대신 부를

    키워나가기 위해 안달복달하던 삶의 편린들이 끼어든다. 살아가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지는 않았던 시절들이.

    월미도에 도착해 맥주 한 잔을 마시던 그는 외국으로 혼자 파견나간 후 아내에게 ‘나 외국에 파견나와 있다’고 뒤늦게 고백하는 상상과 지금 눈앞에서

    면허 시험에 합격한 아내가 애교를 떠는 현실 속에 뒤섞인다.

    이 현실은 매우 괴로운 것이다.

    그 괴로운 현실 속에는 ‘맨날 양수리 타령을 했으니 그곳으로 드라이브시켜 주겠다’는 아내의 인심쓰는 듯한 목소리도 들어 있다. 하지만 그는 결연하게

    한 인식을 받아들인다. 늘 가고자 했으나 이제는 결코 양수리에 갈 수 없을 것임을. 양수리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현실을.

    양수리 가는 길은, 그렇다. 앞서 얘기했듯이 물안개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동시에 물안개의 낭만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기 위해 가는 길이기도 하다.

    북한강은 여전히 넓고 깊게, 멈춘 듯이 흘러가지만 양수대교를 건너기 전의 조안면 쪽 길과 양수대교를 건너 왼편으로 꺾어지는 서종면 쪽 길 어느 곳에서도

    이제는 순수한 흙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요란한 풍경과 낯선 조어造語들로 이루어진 호텔 간판들과 수상 스키를 타는 선남선녀들의 모습 속에서 자본주의의 힘으로만 가능한 낭만을 볼 뿐이다.

    자본주의란, 특히 한국에서의 자본주의의 힘이란 얼마나 힘이 센가.

     



     

     

    그래도 서종면

    으로 꺾어들어 청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호젓함이 많이 남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흙냄새 풀풀 이는 신작로 길을 벗할 수 있었지만 그 길조차

    아스팔트로 포장된 것은 도리없는 아쉬움으로 접어야 할 일.

     

     

     

     

     

    강둑에 핀 장미의 아름다움과 애인의 손처럼 작은 찻집의 간판들과 물비늘의 눈부심 같은 것이 아직은 ‘양수리 가는 길’의 희망을 버텨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양수리를 배회할 때, 소설 속의 그가 ‘양수리 가는 길’의 희망을 못 이루고 마음속에서만 양수리를 안고 있는 것은 반쪽의 행복과 반쪽의 불행

    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양수리는 소설 속의 그가 꿈많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내가 왜 이렇게 왜소해졌는가’라고 곱씹는 샐러리맨의 아픔을 달래기에 좋은 곳이며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저녁 석양빛이 강을 비출 때 연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싶어지는 곳이다. 꿈많던 시절의 순수함을 망각한 채, 근처의 러브 호텔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사람들은 왜 꿈을 말하지 않는가.

    김인숙의 소설들은 많은 부분 현실의 삶을 말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을 뒤집어 보면 꿈을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양수리에는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은 상태로 ‘양수리, 양수리’라고 말하다 끝내 양수리에 가는 꿈을 포기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었을

    것이다.

    양수리에 가지 않더라도 매일 밤 양수리에 가는 것과 다름없는, 그럼으로써 마음속의 물안개를 간직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라는 화두를 떨어뜨렸다는

    뜻이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는 김인숙의 소설 속에 ‘양수리에 가는 희망을 품고 살라’는 메시지도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버드나무 숲길을 걸으며 화물열차가 지나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수상스키를 타던 청년이 스키에서 미끄러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식도락가들이 고급 차를 몰고와 강변의 정취에 취해가는 모습을 보는 일, 이 모든 눈길에 ‘이곳에는 안식이 있다’는 한줌의 평화를 담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넉넉한 물줄기의 흐름이다.

    강은 강이되 바람의 힘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진중함이 두 개의 길 사이로 흐르는 북한강 고유의 멋스러움이다.

    <양수리 가는 길>에는 ‘그’의 말 그대로 양수리로 가는 지도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지도를 들고 있다 해도 마음속에 양수리에 대한 꿈이 없다면 우리는

    끝내 양수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몸뚱이는 양수리에 가 있어도 그 몸뚱이를 지탱하는 머릿속에 물안개를 피워올리는 추억이 없고, 현실을 이겨나갈 지혜가 없으면 양수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양수리 가는 길, 그 길 위에 물안개가 핀다.

                                        

                                         두물머리 아침을 지키는 저 느티나무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400 세라고 한다. 그는 한 세대를 건너뛰어 그곳을 지키고 있다



    그곳에 갔을 때

    이기철 시인의 <봄날>을 읽으며 양수리 건너편의 서종면에서 시작되는 길을 따라갔을 때는 비포장 도로가 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양수리 가는 길>을

    읽으며 다시 그 길을 달릴 때는 황토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호사스런 찻집과 고깃집이 죽 늘어서서 드라이브에 나선 청춘들의 입맛을 채워주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것이 세월인가 싶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추억을 낳는 길이 아니라 추억을 만드는 길로 변하는 것.

    그래서일까. <양수리 가는 길>을 읽으면서, 해외로 나가게 되는 작중의 남편이 끝내 양수리로 가지 않고 인천으로 방향을 잡는 줄거리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소설적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그러나 양수리는 여전히 우리들 마음속에 남아 있어야 할 길인 것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전히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 어느 구석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곳이 있는가.

    <양수리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부러운 눈길을 받는 계층이 화이트 칼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학물 먹고, 떠르르한 직장에

    취직해서 잘나가는 듯이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는 이 땅의 화이트 칼라들에게, 혹은 이 땅의 젊은 가장들에게 무슨 꿈이 남아 있는가. 그들에게 양수리에

     가고자 하는 꿈이 남아 있다면 물안개를 보며 그런 반문을 되뇌어 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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