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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묵호를 아는가

by 류.. 2005. 5. 30.

 

 

 

묵호는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면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갖게 했던 항구이다. 특히 도시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이 찾은 묵호항은 바다 생선냄새가 물씬 나고, 생선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볼 수 있어 항구만이 가지고 있는 억센 활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동해시 묵호동에 위치한 묵호항은 1941년에 개항한 이래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었으나 동해항이 개항되면서 현재는 어항으로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묵호는 1980년 동해시 개청 전에는 강원도 명주군에 속하였고 원래 이름은 오이진이었으나 일제 때 도계, 태백(황지) 지역에서 생산한 석탄을 배로 실어낸 항구도시로 석탄가루로 바다물이 먹물처럼 검다 하여 "묵호(墨湖)"라고 하였다.

새벽 4시 30분부터 밤새 잡은 고기잡이 배들이 항구로 들어오기 시작하며 배에서 내려진 수산물은 경매되어 외지로 팔려 나간다. 경매는 대개 7시경이면 거의 끝이 나는데, 이 시간에는 일반인들도 산오징어 및 수산물을 싼 값에 살 수 있다. 이 시간 이후에는 항구부두 수산물 활복장 옆에는 오징어, 한치 등 산 횟거리를 파는 장터와 건어물장터가 열리며 초장만 있으면 즉석 회를 맛 볼 수 있다.

묵호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300M 동쪽 해안가로 나가면 대형 횟집 센타와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 까막바위와 해돋이 장소가 있으며, 이 길로 계속 가면 어달리 - 대진 - 마을 망상해수욕장으로 연결되고 아주 뛰어난 해안 절경을 볼 수 있다. 또 묵호 항구의 남쪽 부두는 울릉도 여객선 선착장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젊은이여! 삶 들끓는 '인간의 바다'로 떠나라


“얘야, 떠나거라. 어서 떠나거라.  얘야,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단다.  자아, 어서 인간의 바다로 떠나거라.  인간의 바다에 멀기가 인다.”

심상대(40)씨의 소설  ‘묵호를 아는가’ 에서 묵호(墨湖)는,  자신의 부드럽게 출렁이는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하는 탕아에게 인간의 바다로 떠나라고 다독거리며 말한다. 바다에는 아무 것도 없다며.  그러나 탕아에게 묵호를 찾아가는 길은 실상 그 ‘인간의 바다’ 를 도로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묵호를 아는가’ 는 귀향소설(歸鄕小說)이다.  김승옥이 ‘무진기행’에서 60 년대 귀향소설의 신화를 만들었다면  심씨는 1980 년대가 저물고 90 년대가 시작되는 초입에서 이 작품으로 다시 한번 아름다운 귀향소설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기실 모든 아름다운 젊음의 소설은 귀향소설이 아닐까.  심씨가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 라고 묘사했던 묵호 바다를 고향으로 둔 젊은이.  그 소주 같은 바다를 떠나 인간의 바다로 갔다가 상처받은 젊은이의 귀향. 그러나 그는 결코 다시는 고향에 발붙여 머물지 못한다.  그들이 찾는 답은 결코 고향에,  소주 같은 바다에 있지 않다.  온갖 추악한 애욕이 들끓는 인간의 바다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의 숙명이기 때문일 것이다.

‘출렁,  하며 버스는 곧장 터미널로 들어섰다’ 고 심씨는 이 작품의 초입에서 썼다.  묵호는 지금은 동해시의 한 동(洞)으로만 남아있다.

 

 



1941 년 개항 이후 무연탄과 석회석의 해외수출 항구이자 어업전진기지로,  동해안 제1 의 무역항으로 흥성하던 묵호읍은 1981 년 북평읍과 통합돼 동해시로 탈바꿈했다.  “그때가 참다운 묵호였다” 고 심씨는 회상했다.  “비린내.  묵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한 오징어와 조미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징어를 먹어야 했다.

지독하게도 물고기를 먹어대던 시절이었다.  어느 집 빨랫줄에나 한 축이 넘거나 두 축에서 조금 빠지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널려 있었고,  집집에서 피워올린 꽁치 비늘 타는 냄새가 묵호의 하늘을 뒤덮었다.

후미진 구석마다 쌓여 있던 생선 내장의 악취.  비 온 다음날의 시뻘겋게 상한 오징어.  건조장 바닥에서 떨고 있던 개.  양동이로 머리를 후려치며 싸우던 공동수도의 아낙네들.  욕설과 부패.  묵호의 모든 것이 그랬다.  묵호의 활기는 한국의 축소판이었다.”

돌아온 묵호에서도 주인공은 스스로의 정체를 찾지 못한다.  80 년대말 이데올로기가 상충하던 시대.  주인공은 소주에 취해 자신과 아내의 이혼도 이데올로기의 상충 탓일까라고 반문한다.

‘그래, 언젠가 세계인들은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 코리아로 몰려올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파헤칠 것이다.   이 땅에는 참으로 많은 20 세기의 쓰레기가 산적해 있다.  패총(貝塚).  20 세기의 패총.  인류는 20 세기가 될 때까지 모아두었던 모든 쓰레기를 이 땅에 버렸다.

실천 불가능한 무슨 주의,  무슨 사상.   그리고 채 실험도 거치지 않은 잡다한 이념들이 이 땅에 쏟아졌다.   삽과 솥을 들고 이 패총으로 몰려온 미래의 세계인들은 그들의 사상과 질곡의 역사를 이 땅에서 발굴할 것이다’.

그 울렁거림,  겹겹의 상충에 짓눌린 젊은이는 창녀와의 정사마저 실패한다.  주인공이 매춘부와 정사를 벌이던 여관은 신축 호텔로 바뀌었다.   그 곁의  ‘묵호가(墨湖家)’ 는 비록 퇴락했지만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묵호가는 60 년대말 지어진 묵호의 색주가.

여인에게 지청구를 당한 주인공은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한판의 넋건지기굿,  백사장의 수망굿판을 보고  ‘연희’ 에게 전화를 한다.  그의 첫사랑 연희는 방금 출항한 친구 박선장의 부인이 돼 있다.  그녀와의 정사 후 주인공은 구토한다.

‘구르는 돌처럼 저항할 줄 모르고 언제까지나 이 해변에 어정쩡히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힘껏 뿌리쳐보지도 못하고 이대로 쓰레기 더미에 파묻힐 수는 없었다.  문득 죽음을 생각했다.  웃음이 나왔다’.

 

심씨는 이렇게 한 젊은이의 귀향 하룻밤을 통해 당시 젊은이의 내면과 한국사회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당시 우리 젊은이들의 모호한 정체성 문제였던 것 같다” 고 말했다.

사실은 산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바닷가가 묵호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절실하게 묻고 있고,  그래서 악다구니를 벌이는 곳이 묵호이고 이 땅 전체인 셈이다.

“저기  ‘할복금지구역’ 이란 글씨가 써 있었습니다.”   심씨는 피서철 인파로 더욱 북적대는 묵호항 방파제 끝에 서서 말했다.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고,  여기서는 오징어 배를 가르지 말라는 경고문구였지요.  할복금지구역이라….”   주인공은 구토 끝에 묵호 바다가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며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답을 찾아 인간의 바다로 떠나가라는,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들의 속삭임 같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묵호항은 한국의 수많은 항구들 중에서도 특이한 지형적 조건을 갖춘 항이다. 묵호 바다는 동해안의 지형적 특성상 산에서 바로 이어진다.   산이 바다로 가파르게 곤두박질하는 형태다.  일반적 항구들이 이 지형을 피하거나 매립 등으로 완만함을 갖추지만 묵호는 항구의 바로 뒤편이 산자락이다.

일제시대 황급히 항구를 건설하느라 그랬다는 설명이다.  그 산자락으로 영동선 열차가 지난다.

심씨의 동업 소설가 윤대녕은 그 열찻길과 이어진 [7 번 국도]를  ‘신라의 푸른 길’이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 도로야말로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심씨는 바로 이달 초 일산에 가족을 두고 자신만 이곳 묵호로 7 번 국도를 따라 다시 귀향했다.  ‘묵호를 아는가’ 를 쓰던 시절로부터 10 년 만이다.  그도 서른 젊음에서 사십대 고개를 막 넘어섰다.  

그 사이 잠시 머문 적도 있지만 이번 귀향 길은 다시 묵호를 쓰기 위함이다. “한 일 년간 머물면서 묵호를 다룬 장편을 두 편 쓸 작정입니다.”  인근 정동진(正東津)이 엉뚱한 유명세로 제 모습을 거의 잃어가고 있는 사정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는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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