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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정남진...회진항(전남 장흥군)

by 류.. 2005. 5. 30.

 

 

 


포구에 닿기 전 도립공원 장흥 천관산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내보인다. 금세 하늘로 날아오를 듯 산정의 바위들이 햇살을 받아 흰 속살을 내보인다. 바라만 보아도 오금이 저릴 것 같다. 산이 끝나는 곳은 이내 바다다. 부두에 서서 바다를 본다. 쉴 새 없이 배가 드나들고, 오른쪽 뻘에서는 낙지를 잡는지 일하는 여자들이 많다. 뻘 너머로 보이는 길이 이청준 선생의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그 옆으로 물이 빠지면 육지가 되는 섬 하나가 있는데, 그 섬 너머로 작은 솔섬 하나가 보일 것이다. 그곳이 한승원 선생과 이청준 선생의 많은 소설에 나오는 금섬(까막섬, 깡섬)이다.

부두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길게 이어진 제방이 보인다. 회진과 덕도를 잇는 제방 겸 도로이다. 덕도는 한승원 선생이 태어났던 섬인데, 지금은 육지와 이어졌다. 그리고 부두가 있는 이곳 회진항은 한승원 선생의 대하소설인 ‘동학제’의 주요 배경이 된 곳이다.

포구에서의 감상이 끝났다면, 작가들의 생가를 둘러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학동 나그네가 걸었던 길로 조금만 가면, 오른쪽에 진목 마을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야트막한 등성이를 넘어가는 오르막길을 따라 잠시만 가면 문득 보리밭 아래로 포근해 보이는 마을 하나가 보인다. 이청준 선생의 생가가 있는 ‘진목리’이다. 이 마을은 선생의 소설 ‘눈길’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눈길에서 걸었던 길은 이 마을에서 대덕읍 삼거리까지의 길이다.

진목에서 빠져나와 이제는 한승원 선생의 고향 마을로 가보자. 다시 회진으로 와서 덕도 가는 길로 가면 된다. 마을이 제법 커서 한 마을로 보이지만 실은 여러 개의 마을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회진은 이 나라의 정남진(서울과 경도상으로 일치하는 곳)이다. 아직까지는 한 인기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정동진이 각광을 받는 동안, 수많은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정남진(회진)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묵을 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 문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삭은 음식이 발달한 남도가 아닌가.


 

 

 

 

    회진항에는 허름한 하늘이 있다 / 김영남

     


    내가
    회진항의 허름한 다방을 좋아하는 건
    잡아당기면 갈매기 우는소리가 나는
    낡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

    허름한 바다와 하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허름한 바다와 허름한 하늘이 존재하는 공간.
    그곳에는 언제나 오징어가
    이웃 순이의 팬티처럼 펄럭이는 빨랫줄이 있습니다.
    그리고 검은 통치마를 입은 어머니가 바닷가로 걸어나가고 있고,
    그 바닷가 하늘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완장을 차고 만화가게 앞으로 나타나는 게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회진항의 허름한 다방을 좋아하는 건
    아직도 난로 위 주전자 뚜껑 소리 같은 사투리가 있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도 외상으로 남기는 목포 아저씨,
    그 백구두 소리가 날아가는 하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득량만에 접한 전남 장흥에는 과연 무엇이 있어 문인·예술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리 즐비할까. 장흥사람들은 장흥을 ‘자응’이라고 발음한다. 소설가 이청준(64)씨와 시인 김영남(46)씨,한국화가 김선두(45)씨가 고향 ‘자응’을 들고 나왔다. “큰산 꼭대기 구룡봉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었다. 남쪽으론 조그만 숲동산 같은 그의 마을 뒷산 너머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수평선도 짓지 않은 채 곧장 하늘로 이어져 올라갔고,북쪽을 향해서는 셀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산들이 부연 연무 속으로 겹겹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이청준의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에서)

이씨의 고향은 봄이면 손톱만한 뻘개들이 마파람과 숨바꼭질하는 진목리,시인 김씨의 고향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장대를 걸치면 걸쳐질 듯 보이는 심심산골 분토리,화가 김씨의 고향은 득량만을 품은 평촌리다. 뿐만 아니다. 신상리에는 소설가 한승원의 생가가,포곡리에는 송기숙의 생가가,신동리에는 이승우의 생가가,만손리에는 시인 이대흠의 생가가 있다. 차로 10분이면 족한 이웃 동네다. 아니,김석중 백성우 정해천 신동규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을 합치면 23번 국도의 아랫자락이 글쟁이들로 새까맣다.

세 사람이 “고향을 함께 읽어 보믄 어쩌까”라며 어깨를 겯은 게 2002년 4월부터 지난 연초까지 벌써 다섯 차례다. “내가/회진항의 허름한 다방을 좋아하는 건/잡아당기면 갈매기 우는 소리가 나는/낡은 의자에 앉아 있으면/허름한 바다와 하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허름한 바다와 허름한 하늘이 존재하는 공간./그런 곳에는 언제나 오징어가/이웃 ‘순이’의 팬티처럼 펄럭이는 빨랫줄이 있습니다.”(김영남의 ‘회진항에는 허름한 하늘이 있다’에서)

이씨는 이 책을 ‘고향 속살 함께 읽기’라고 명명했다. “우리 셋은 이를테면 각기 그 고향 풍물과 사람들에 대한 동질의 정서 지도를 지녀온 셈이다. 그러나 그 지도는 겹치는 부분이 많으면서도 서로 엇갈리는 대목 또한 없지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된 한 장의 고향 지도를 위해선 바로 그 엇갈리는 대목이야말로 서로 미처 읽어내지 못한 그 땅의 다른 소중한 속살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화가 김씨는 책에 실은 그림 등 40여 점을 모아 8∼21일 인사동 학고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이청준 외·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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