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에는 일기를 쓰지 않았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언제나
바람이 허파 속에서
부러진 날개를 푸득거리고 있었어
생손앓이 사랑 끝에 도시는 폐쇄되고
톱질 당한 다리 절름거리며
무채색 하늘을 건너가는 가로수들
거리에는 음악소리 저물어 가고
내 목숨 마른 풀잎 하나로 허공을 떠돌았지
기다리던 함박눈은 내리지 않았어
어느새 인적이 끊어진 지하도 가판대
석간신문들은 거만한 목소리로
낭만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지
끝내 실종된 친구들은 돌아오지 않았어
시간의 늑골을 분지르며 질주하는 전동차
도시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흔들리며
겨울의 중심부로 유배되고 있었지
아무도 침몰하는 세상을 욕하지 않았어
다만 흐린 밀감빛 등불 아래
어느 서정시인의 시집을 펼쳐들고
한 여자가 소리죽여 울고 있었지
문득 고백하고 싶었어
만약 이 세상에 진실로 봄이 온다면
날마다 그녀가 차리는 아침 식탁
내 영혼 푸른 채소 한 잎으로 놓이겠다고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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