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줄만 쓰고 그만두려 했던 시를 평생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라 내가 편지에, 잘못 살았다고 쓰는 시간에도 나무는 건강하고 소낙비는 곧고 냇물은 즐겁게 흘러간다. 꽃들의 냄새가 땅 가까운 곳으로 내려오고 별들이 빨리 뜨지 못해서 발을 구른다. 모든 산 것들은 살아 있으므로 생이 된다 우리가 죽을 때 세상의 빛깔은 무슨 색일까, 무성하던 식욕은 어디로 갈까, 성욕은 어디로 사라질까, 추억이 내려놓은 저 형형색색의 길을 누구가 제 신발을 신고 타박타박 걸어갈까, 비와 구름과 번개와 검은 밤이 윤회처럼 돌아나간 창을 달고 집들은 서 있다 문은 오늘도 습관처럼 한 가족을 받아들인다 이제 늙어서 햇빛만 쬐고 있는 건물들 길과 정원들은 언제나 예절 바르고 집들은 항상 단정하고 공손하다 그 바깥에 주둔군처럼 머물고 있는 외설스러운 빌딩들과 간판들 인생이라는 수신자 없는 우편 행랑을 지고 내 저 길을 참 오래 걸어왔다. 내일은 또 누가 새로운 식욕을 되질하며 저 길을 걸어갈까, 앞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지우면서 내 이 길을 걸어왔으니 함께 선 나무보다 혼자 선 나무가 아름다움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내 풍경 속에 천 번은 서 있었으니 생은 왜 혼자 먹는 저녁밥 같은가를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이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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