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길을 가다 만나는 찐빵 가게에서 솥 바깥으로 치솟는 훈김 같은 것.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오 년이 되어도 읽지 못하는 두꺼운 책의 무거운 내음 같은, 사랑은 그런 것.
여행지에서 마음에 들어 샀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의 문양 같은 것.
머쓱한 오해로 모든 것이 늦어버려 아물어지지 않는 상태인 것,
실은 미안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돌의 입자처럼 촘촘하지만 실은 헐거운 망사에 불과한 것. 사랑은 그런 것.
백년 동안을 조금씩 닳고 살았던 돌이 한순간 벼락을 맞아 조각이 돼버리는 그런 것.
시들어버릴까 걱정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들게 두는 것.
또 선거철에 거리의 공기와 소음만큼이나 어질어질한 것.
흙 위에 놀이를 하다 그려놓은 선들이 남아 있는 저녁의 나머지인 것.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Queen "Love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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