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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

by 류.. 2009. 6. 6.

 ◇ 우에무라 나오미

몽블랑 혼자 등정 킬리만자로 혼자 등정 아마존 뗏목 탐험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세계 최초로 오대륙 최고봉 등정 북극권을 혼자서 1만 2천 킬로미터 개 썰매 여행 세계 최초 메킨리를 겨울에 혼자 등정
    "우에무라 나오미" 어쩐지 이름에서 여성적인 냄새가 나는 이 모험가를 사람들은 "짐승"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가 쓴 책은 여럿 있지만 "아내여, 나는 죽으러 간다"에는 히말리야나 스위스에서 쓴 글도 있지만 북극을 혼자 개 썰매 여행할 때 아내에게 쓴 편지가 많다. 이 "짐승"은 귀엽다. 스폰서가 있긴 있어서 기록하고, 사진 찍고, 일기 써야 되는데... 아내한테 편지 쓰는 걸 앞서 했고, 열심히 했고, 좋아했다. 그래놓구선 아내보고 자기가 편지 자주 한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짐승"도 우울하고, 포기하고 싶고, 어디로 푹 꺼져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절대로 죽지 않겠다 맹세하고 다짐했다. 자기보다 몸 약한 아내가 더 걱정이어서 스타일을 중시하지 말고 꼭 배에 복대를 두르라고 한다. 짐승의 생간을 먹으라고 한다. 어릴 때 먹고 자랐던 시골 음식을 그리워하고, 줄어든 스웨터를 덧대는 뜨게질을 하고, 썰매를 끄는 개의 가죽신을 만든다. "짐승"에게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내달라는 염치 없는 부탁을 하고, 염치 없는 자신 때문에 의기소침해 한다. 돌아가면, 남들처럼 저축하고, 평범한 삶도 살아보리라 다짐도 한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노가다를 뛰어서 번 돈 110달러를 가지고 무작정 미국으로 내뺀다. 한 동안 캘리포니아의 포도농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그는 그러나 미국 이민국에 검거되어 강제출국을 당한다. 그리고는 대서양을 건너 찾아든 곳이 알프스이다. 크레바스에 빠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스키장의 잡역부로 취직하여 그곳에 눌러앉는다. 이 스키장의 주인은 동계올림픽 활강 부문 우승자였던 프랑스의 스키어 장 바르네였는데 나오미가 평생토록 은인으로 모셨을 만큼 그에게는 둘도 없는 후원자였다. 알프스의 스키장은 일종의 베이스캠프였다. 나오미는 그곳에서 약간의 돈과 체력만 갖추게되면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높은 산과 긴 강 그리고 얼음만이 끝없이 펼쳐진 극지를 골라 저 홀로 돌아다녔다. 유럽의 몽블랑(4,807),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5,895), 남미의 아콩가구아(6,960)가 차례로 이 5척단신의 일본인 방랑자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 사이에도 히말라야 고줌 바캉2봉(7,646)을 세계초등하고 아마존강의 6,000Km를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등 나오미의 유쾌한 모험은 쉬지 않는다. 그가 2개월에 거쳐 생명을 의탁한 뗏목을 보면 참으로 그 꼴이 가관이다. 포장마차보다 더 허름해보이고 판잣집보다 더 쉽게 부서질 것만 같다. 그 초라한 뗏목의 이름이 '안나 마리아'였다. 남미로 향하던 배 안에서 만난 한 수녀에게 반해 그녀의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란다. 수녀와의 로맨스?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저 혼자 반해 제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는 뗏목이 좌초되거나 부서져나갈 때마다 "안나 마리아!"를 목놓아 외쳤을 따름이다. 나오미는 그렇게 낙천적이고 속없는 청년이었다. 1970년 5월 21일, 그는 일본인으로서는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 정상에 선다. 그러나 마음은 편치 않았다고 한다. 단독등반이 아닌 합동등반이었던 까닭이다. 공격조인 자기 한 사람을 위하여 대규모원정대 전체가 갖은 고생을 다 하는 것을 보고 너무도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오미는 그렇게도 착한 마음과 여린 가슴을 가진 남자였다. 그가 에베레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최고봉들을 모두 단독등반으로 오른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북미의 매킨리 (6,194). 그때까지 단 한번도 단독등반허가를 내준 적이 없던 미국당국에서도 에베레스트까지 오른 이 희대의 클라이머에게는 예외를 인정했다. 1970년 8월 26일, 우에무라 나오미는 매킨리 단독등반에 성공한다. 이로써 그는 인류 최초로 5대륙 최고봉을 모두 올라 세계등반사에 굵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을 아로 새겨넣은 거의 유일한 아시아인이 된다. 그의 나이 겨우 29살 때의 일이다. 내 청춘 산에 걸고(일본 초판, 1971)가 다루고 있는 내용은 대략 여기까지이다. 그러나 자유인으로서의 그의 모험인생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수직에의 추구를 일단락한 그는 이제 수평에의 추구에 매달린다. 그린란드의 에스키모들과 함께 뒹굴며 1년간 극지생활을 하던 그는 기어코 개썰매를 이끌로 남극점을 밟는 3,000Km의 단독여행을 성사시킨다. 그리고는 이제 막 결혼한 신부를 뒤에 두고 다시 단독북극횡단에 도전, 무려 17개월에 걸쳐 12,000Km를 주파하는 전무후무한 모험기록을 남긴다. 영하 52도의 살인적인 추위, 쩍쩍 갈라지는 빙원, 백곰의 습격, 그리고 끝없는 고독과의 싸움… 그의 또 다른 저서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곽귀훈 옮김, 평화출판사, 1989)는 이 장엄한 모험의 기록이다. 그 극한상황의 처절함 못지 않게 썰매개의 리더인 안나와의 우정(?)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웬만한 종교서나 철학서를 훌쩍 뛰어넘는다.전세계인을 놀라게한 나오미의 모험은 매킨리에서 중단된다. 43살 되던 해인 1984년 2월 13일, 세계 최초의 매킨리 동계단독등반에 성공한 다음 아사히 텔레비전과의 교신을 끝으로 소식이 끊긴 것이다. 그가 파놓은 설동도 발견되고 그가 떨군 장비들도 수거되었지만 시신만은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에드문드 힐러리는 "그는 현대 제일의 모험가였다. 단순한 클라이머가 아니다."라며 애도했다. 라인홀트 메스너 역시 "나오미의 남극행에 나도 동행하고 싶었다."면서 세계 최강의 맞수 혹은 파트너를 잃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본열도는 슬픔에 가라앉는듯 했고, 전세계의 산악인들은 저마다 옷깃을 여며 그에 합당한 예를 갖췄다. 우에무라 나오미는 그렇게 현대의 전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산악인 혹은 모험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의 이미지 속에 남아있는 그는, 불손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유쾌한 방랑자이다. 그는 알프스의 스키장에서 일할 때도 틈만 나면 텐트를 싸짊어지고 아무 데나 발길 닿는대로 걷다가 야영을 했다. 케냐에 가서도 그는 킬리만자로에 오르기 전에 마사이족 마을을 방황했었다. 5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은 다음에는 엉뚱하게도 일본 열도를 도보로 종단하며 즐거워했다. 심지어 단독북극탐험에 나섰을 때도 캐나다의 앤더슨 베이에서 만사를 제쳐놓고 낚시질로 소일하며 한 여름을 보냈다. 전 세계인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모험가였으면서도 행색은 언제나 거지꼴이었으며 음식은 빈한하다못해 초라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관 없었다. 구멍 난 호주머니 속일지라도 여비만 있으면, 그리고 체력만 허락한다면, 그는 언제나 주저없이 세상사를 떨쳐버리고 저 홀로 배낭을 꾸렸다. 그리고는 두려움도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의 극지와 오지를 하릴없이 떠돌아다녔다. 이보다 더 멋진 방랑자를 본 적이 있는가? 천진하기 짝이 없는 장난꾸러기 소년, 대열에서 이탈한 도꼬다이형 사무라이, 자유와 방랑을 갈구하는 전세계 배낭여행자 들의 맏형…이것이 우에무라 나오미의 이미지이다. 고대 인도철학에서는 인간들을 '삶을 고행으로 받아들이는 자'와 '삶을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자'로 나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에무라 나오미야말로 '삶을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자'의 세계챔피언감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유쾌한 방랑자의 젊은 초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 바로 '내 청춘 산에 걸고'이다 그의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그가 이 별의 어느 후미진 오지를 예의 그 소년 같이 천진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냥 걷고 있을 것만 같다. 우리들 모두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는 방랑에의 역마살을 일깨워준 그에게 축복 있으라 (어디서 퍼와서 보탠 글)






상처입고 재기 불능상태가 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원해
사람은 모두 나약함을
등에 지고 살아가지
쓰디쓴 눈물을 맛보더라도
미소짓는 다정함을 원해
네가 사랑에 매달리는 것 보다
우선은 네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마지막 기회를 잡아

쉽게 벗겨지고 지는 아름다움보다
한 방울의 땀이 더 낫지
두번 다시 달릴 수 없는 비탈길을 오른다면
마지막 기회를 잡아


누군가가 인생에서 좌절했을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배려를 원해
사람은 모두 쓸쓸함을
등에 지고 살아가지
빰을 찌르는 두려움이 있더라도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원해
꼬불꼬불한 미로에서
진짜 나 자신을 찾는거야
마지막 기회를 잡아

탁자 위에 장식된 장미보다
들에 핀 풀꽃이 더 낫지
두 번 다시 달릴 수 없는 비탈길을 오른다면

마지막 기회를 잡아







HOLD YOUR LAST CHANCE/長渕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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