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면

by 류.. 2008. 9. 22.

 

 

 

 

 

 


             조선 남자들은 군대와 축구 이야기를 양로원에 가서도 하고 조선의 여자들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면 양로원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그런데 군대에서 라면 먹은 이야기라면 어떨까.
             그것도 여자 덕분에 먹은 라면이라면 


             1982년에 이 몸이 군대를 갔더니 일요일 아침으로는 라면을 주었다. 그 라면은 연대급의 병력이
             한꺼번에 먹어야 한다는 제약 때문인지 삶아서 주는 것이 아니고 쪄서 주는 것이었다. 삶은 라면
             과 달리 찐 라면은 형태가 네모진 그대로 남아 있고 면도 딱딱해서 거의 뜯어먹다시피 해야 했다.

             찐 라면에 날계란 하나,단무지를 식판에 얹어주고 철모만한 국자로 미지근한 수프 국물을 떠서
             부어주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기간병(훈련소에서 작대기 계급장을 달고 장군처럼 행동하는
             위대한 군인들을 이렇게 불렀는데 국가의 기간이 된다는 뜻인지 일정한 기간동안만 그렇게 행동
             하도록 허용되었다는 뜻인지 확인해보지는 않았다)들은 그 라면을 벌레나 돌처럼 여기는지 날계란
             의 앞뒤만 깨어 쪽 빨아먹은 뒤 식판째 잔반통에 부어버리는 것이었다.

             잔반통에는 임자 잃은 나룻배 같은 라면이 수프의 파도 위에 둥둥 떠다니는데, 영민한 훈련병들은
             그 라면을 잽싸게 건져서 두 개도 먹고 세 개도 먹었다. 이 몸은 영민하지도 못하고 잽싸지도 못했던
             관계로 늘 뒷전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라면 하나로는 한창때의 식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훈련이 없는 일요일이지만 라면 하나로 견디기에는 오전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자빠져서
             잠을 자는 건 죽음을 청하는 짓이었다 

             그럴 때 또한 영민한 병사들은 신자를 참칭하고 훈련소 안에 있는 교회나 절에 갔다. 어쩌다 교회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 수도 있었고 절에서는 떡이나 과일을 준다고도 했다. 그러나 영민치도 못하고
             감히 신의 자식이라고 속일 수도 없었던 이 몸은 거기도 따라가지 못했다. 내무반에 남아있는 훈련병들
             에게는 시시로 사역이 떨어졌다. 내무반 주변의 풀을 뽑거나 도랑을 치거나 쓰레기장을 청소하는 일 따위.
             이 몸에게는 그런 사역이 늘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연대 병력이 쏟아낸 변소의 오물을 오물처리 차량이
             퍼내고 난 뒤 호스가 닿지 않는 부분의 오물을 바가지로 퍼내는 사역까지 한 적이 있다 


             "전달! 식당 사역 각 내무반 다섯 명! 선착순으로 중대본부 앞에 집합!"
             변소 사역이 끝나고 내무반으로 가니 동료들이 냄새가 난다고 문을 잠그고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양지쪽에서 어정거리고 있는데 천상의 부름인 듯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내무반 안에서는 
             저마다 신발을 꿰어신고 모자를 쓰고 달려나오는 소리가 콩을 볶는 듯했다. 식당 사역은 그만큼 인기가
             있었다. 나는 밖에 있었으니 거리로는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줄에서 '다섯' 하고
             번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일동이 두 팔을 씩씩하게 흔들며 식당으로 행진해가니 지상에서 가장 유복해 보이는 군인들이 깨끗한
             요리사 복장을 하고 우리를 맞았다. 사역을 하는 동안 음식을 훔치면 사형,사역을 하는 동안 허락 없이
             음식을 먹어도 사형, 하역을 하는 동안 떠들어도 사형, 하품을 해도 사형......기타 등등의 주의사항을 
             듣고 각자의 자리로 배치되었다.

             변소청소에서 얻은 냄새 때문에 �겨날까 몸을 웅크리고 있던 나는 식당 사역에서도 가장 나쁜 보직을
             받았다. 말린 미역을 산더미같이 쌓아놓은 구석에서 가위로 미역을 네모지게 자르는 일이 내 일이었다.
             남모르게 미역을 입에 넣어보았으나 얼마나 짜고 딱딱한지 10초 이상 입에 넣고 있을 수가 없었다. 튀김
             보조를 하는 영민한 동료들은 연신 튀김옷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입에 집어넣으면서 한편으로는
             군복 속으로 튀김을 슬쩍슬쩍 집어넣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눈물이 다 났다. 


            "야! 신병! 너 왜 울어? 미역 보니까 엄마 찌찌 생각나냐?"
             변소에서 오물이 튀어 냄새가 나는 소매로 콧물을 닦는데 지나가던 병사,글쎄 병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쑥하고 깔끔하고 여유가 있어 보이고 아니라고 하자니 거기 있을 이유가 없는 웬 장성급 병사가 나를
             보고 묻는 것이었다.

            "예. 신병 성말구! 아닙니다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질렀다. 정체 모를 인간은 귀가 따가운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너 누나 있어?"
             그냥 가려던 그가 문득 물었다. 물론 내게는 누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누나를 팔아 훈련소 취사장에서
             정어리 튀김을 얻어 먹을 만큼 영민하지 못했다. 

            "없습니다아!" "애인은?" "없습니다아!" "그런데 왜 찔찔 짜냐구우?" "모릅니다아!"
             그는 공깃돌을 놀리듯 경쾌하게 질문했고 나는 그때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목이 쉬어있었다. 

            "너 어디 다니다 왔어?" "학교 다니다 왔습니다아!" "학교? 대학교?"
             그럼 중학교 다니다가 월반해서 군대를 가는 아해도 있나. 나도 모르게 물을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그렇습니다아!"
            "좋아. 따라와."
             알고 보니 그는 취사장의 대왕이라고 할 수 있는 취사반장이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햇볕이 비쳐드는 아늑한
             자리에 가더니 눈부시게 흰 요리사 가운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나를 보고 읽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황송한 자세로 서서 편지를 읽었다 그 내용은 언급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취사반장으로 사역을 와서 누나의
             주소와 인적사항을 적어주고 정어리 튀김을 얻어먹은 영민한 신병의 누나에게 육군 훈련소 주방의 대왕이 
             밤새워 쓴 연서' 라고 제목을 붙이겠다.

            "어때?"
             그는 내게 물었다. 감동적이다. 기념비적이다. 호소력 그 자체다. 편지를 받자마자 당장 짧은 치마로 갈아입고
             면회하러 달려올 것이다...... 내가 조금 영민했다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나 나는 어느 한구석도 영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자가 너무 많습니다. 문장도 이상하고요." 그는 다시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
             나는 그가 집어든 거대한 국자가 내 이마를 강타하는 광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네가 다시 써볼래? 나는 사회에서도 주방에만 있었거든. 정말 이런 편지는 죽어도 못 쓰겠더라."
             눈을 떠보니 내 앞에는 대왕도 아니고 장성급 병사도 아니고 그저 사랑에 목마른 청년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편지지와 받침대를 가져오게 했고 나는 편지를 대신 쓰기 시작했다.

            "너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문득 그가 물었다. 나는 목이 메어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뒤에 산처럼
             쌓인 라면 박스를 가리켰다. 그는 박스를 열고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다섯 개들이 비닐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신부처럼 순결한 라면 하나를 꺼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쇼트닝' 이라는 글자가 써진 양동이 
             만한 깡통에 바닥을 가릴 정도의 물을 붓고 라면을 뜯어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연대급 병력의 밥을 한꺼번에
             취사할 수 있는 거대한 가스레인지 위에 깡통을 얹었다. 5초 만에 물이 끓었고 물이 끓자마자 그는 불을 껐다.
             그리고는 깡통을 기울여서 식판에 라면을 부었다.

             그 라면은 내가 그때까지 사회에서 먹었던 어떤 라면보다 감동적이고, 기념비적이고, 호소력 그 자체였으며
             그 라면때문에라도 다시 군대에 가고 싶을 정도다.

 

 

              -성석제의 수필  '군대라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