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지러운 저녁, 나는 갑천을 찾는다
천변의 산책로를 천천히 따라 걷거나
가끔은 다리 위에서 어두워오는 갑천을 바라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형형색색의 가로등 불빛들이 밤의 수면 위에 비쳐
만들어내는 그림의 아름다움..
어두운 강물이 투사해 만들어내는 빛의 스펙트럼..
글을 쓰는 일도 저렇듯 일상의 삶을 저마다의 심경에 비추어
상을 지어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에 비친 불그림자가 불빛보다 아름답듯, 일상의 지리멸렬함이
문학적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되려면 명경지수와도 같이
평정한 마음 상태가 먼저 다져져야 하지 않을까
깊고 잔잔한 물이 되는 일.
적막한 골짜기와 허무의 늪을 지나 침묵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 있음의 기쁨과 슬픔, 한숨과 그리움을 삭히고 가라앉혀
고른 화소의 액정화면을 다듬어내는 일이
상을 아름답게 맺는 첫째 비결인 듯싶은 것이다
물방울이 사라지고 흐름만 남아 있는 도도한 강물과도 같이
빗방울도 빗줄기도 그리지 않고 젖혀진 댓잎파리의 표정만으로
비와 바람을 그려내는 선인들의 옛 그림과도 같이
말은 삭아 없어지고 혼만 여울져 어리는 글의 고요함 같은 것.. 깊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오늘 읽은 시...
안도현의 마지막 편지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도 가려 주리라 그대 진정 나를 사랑하거든
사랑했었다는 그 말은 하지 말라
그대가 뜨락에 혼자 서 있더라도
등 뒤로 지는 잎들을 내게 보여 주지는 말고
잠들지 못하는 밤 그대의 외딴집 창문 덜컹댄다 해도
행여 내가 바람되어 두드리는 소리로 여기지 말라 모든 것을 내주고도 알 수 없는 그윽한 기쁨에 돌아앉아 몸을 떠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이제 이 세상을 나누어 껴안고 우리는 괴로워하리라
내 마지막 편지가
쓸쓸하게 그대 손에 닿거든
사랑이여 부디 울지 마라
길 잃은 아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대가 길이 되어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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