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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첫눈

by 류.. 2006. 11. 6.

 

 


첫눈..
노오란 은행나무 가로수가 인상적인 국도위에서..
올해의 첫눈을 맞았습니다

모든 자연이 몸을 비워 겨울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직은 가을이라고 고집을 피우느라
겨울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그날, 첫눈 내리던 그 길은
영락없는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은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고
모든 그리움들이
사랑이라는 온기를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좋습니다
또 한가지,
기다림 끝에는 봄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숙명처럼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눈은 들판과 마른 나무 가지에 앉자마자
생명을 다한 듯 사라졌습니다
아주 가볍게 내려앉을 수 있었던 건
생명 다함에 아무런 이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시작인 겨울,
언제나 언 손을 녹여 줄 수 있는 당신이 있어서
추운 겨울도 따스해질 것을 믿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그대와 함께 만났던
첫눈...
전혀 예상치 못했던 눈이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겨울숲에서/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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