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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영동군 상촌, 영화 '집으로' 의 무대

by 류.. 2006. 8. 29.

 

 

      충북 영동 901번 지방도로] 휘파람 분다… 외갓집 가는 길 처럼

       

       


      세상에 ‘시골 외갓집’보다 더 정겨운 단어가 어디 있을까.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 외갓집 가는 길이 늘 시골로 그려지는 것은 어렸을 적에 경험한 아련한 향수 때문이리라.

      경북 상주시와 김천시를 잇는 충북 영동군의 901번 지방도로는 빛바랜 흑백사진의 추억처럼 외갓집 가는 길을 대표한다. 상주 모서면에서 영동 황간면으로 여행을 떠난 901번 지방도로는 왜가리와 버들피리가 숨바꼭질을 하는 금강 지류와 함께 포도밭 사이를 달려 원시림으로 유명한 상촌면 흥덕리에 이른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이른 아침 텃밭에서 아침상에 올릴 풋고추와 호박잎을 따고,반백의 할아버지는 이삭이 막 패기 시작한 논에서 피를 뽑는 정겨운 풍경도 901번 지방도로에서는 흔하다.

      감나무에 둘러싸인 황간면 금계리와 용암리는 전형적인 시골 외갓집 마을. 호박꽃이 담장을 수놓은 울 밑에는 외손녀들의 손톱을 곱게 물들일 봉선화가 나날이 붉은 빛을 더하고 있다. 뿐만이랴. 봇도랑에서 날아오른 물잠자리 떼는 망초꽃 흐드러진 논두렁에서 어지럽게 춤을 추고 허물어진 돌담 밖으로 고개를 내민 해바라기는 외할머니의 환한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901번 지방도로는 황간면소재지로 진입하기 직전 한천팔경으로 유명한 월류봉(月留峰)을 만난다. 달이 머물다 간 봉우리란 뜻의 월류봉은 금강 지류인 법화천에 발을 담근 바위산으로 미루나무가 싱그런 백사장과 정자가 여백미 듬뿍 묻어나는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놓은 듯 호젓하다.

      길은 구름도 쉬어 간다는 추풍령 고개를 넘은 서울행 완행열차가 거친 호흡을 고르던 황간역을 벗한다. 황간역은 애초부터 타고 내리는 이 드물어 적적했지만 고속열차가 노선을 달리하는 바람에 스쳐가는 길손마저 줄어 더욱 쓸쓸하다. 기적보다 매미 소리가 더 요란한 황간역의 녹슨 철로를 수놓은 접시꽃이 외갓집 동네에 살던 예쁘장한 소녀의 얼굴과 겹쳐진다.

      황간 쌍굴을 통과해 매곡면에 접어들면 길은 감나무 가로수로 한껏 멋을 부린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풋감은 한적한 시골길을 뒹굴고 길섶을 수놓은 코스모스는 초강천에서 멱을 감는 개구쟁이처럼 낯선 길손에게 손을 흔든다. 길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과 원두막 풍경도 901번 지방도로의 매력 포인트.

      추억의 길은 상촌면 면소재지인 임산에서 영화 ‘집으로’에서 말 못하는 외할머니 역을 맡은 김을분 할머니가 외손자에게 주기 위해 초코파이를 사던 일성상회를 만난다. 일성상회의 하정우(69) 할머니는 요즘도 초코파이를 사러 오는 사람이 가끔 있다며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50년도 더 된 나무 돈통에서 거스름돈을 꺼낸다. 그리고 다듬던 무 다섯 뿌리를 한사코 차 트렁크에 실어준다. 보자기에 이것저것 싸주던 외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임산에서 물한계곡 가는 길과 이별한 901번 지방도로는 김을분 할머니가 살고 있는 궁촌을 향한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나타나는 작은대실 큰대실 등 호두나무에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 풍경은 옛날과 다르지 않다. 빨갛게 녹슨 대문을 열고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아이구,내 새끼 왔나”며 함박웃음을 띤 외할머니가 버선발로 뛰어 나올 것만 같다.

      김을분 할머니가 사는 점마 마을과 세트장이 있던 지통마 마을 가는 산길은 4년 전 영화에서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길이었으나 어느새 아스팔트로 말끔히 단장해 운치는 전만 못하다. 하지만 매미들의 합창소리와 들녘을 하얗게 수놓은 망초꽃은 그때 그 풍경과 전혀 다르지 않다. 아쉬운 것은 김을분 할머니의 집을 본떠 만든 세트장이 2002년 태풍 루사가 영동 지역을 휩쓸고 갈 때 파괴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김 할머니를 비롯해 3가구 4명이 사는 점마 마을은 사람 그림자조차 그리운 외딴마을이다. 우리나라 산촌의 전형적인 주거형태인 흙벽돌 굴피집은 폐가로 전락했고 수도가 보급되면서 쓸모가 없어진 우물은 이끼만 무성하다.

      김 할머니의 오두막은 여느 외갓집과 마찬가지로 호두나무 고목에 둘러싸여 있다.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정한 김 할머니는 영화처럼 홀로 평생을 살아온 집을 지키고 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엔 할머니의 허름한 옷가지가 걸려 있고,댓돌에는 추억의 ‘진짜표’ 검정 고무신 한 켤레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 나타난 길손이 반가웠던지 김 할머니의 영화 출연 ‘무용담’은 그칠 줄을 모른다.

      “추운 겨울에만 서울 아들집에서 살지. 가끔 관광객들이 찾아와 적적하지는 않아.”

      상우를 태운 버스가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외할머니. 영화처럼 외갓집의 추억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들….

      수더분하면서도 정겨움이 듬뿍 묻어나는 영동의 901번 지방도로를 ‘외갓집 가는 길’이라고 명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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