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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달콤한 인생

by 류.. 2005. 12. 17.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하얀 밤..
가로등이 마치 촛불처럼 희미하게 빛을 바랜채
펄럭이며 내리는 함박눈과 나트륨등의 불빛의 조화가
마치 무대의 조명처럼 멋지게 보입니다
창가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높은 곳에서 기이한 우주쇼가 벌어지고 있군요
천상으로부터 눈송이가 나뭇잎처럼 꽃잎처럼 목화솜처럼
하늘하늘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지요
백장미 수천송이가 바람을 타고 부드럽게 이동하는 것 같이..
참으로 알수 없는 일입니다
하필이면 눈은 왜 밤에 내리는지...

아마도 천사들의 배려와 지혜인듯 싶습니다
겨울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힘든 계절이니까요

밤새 눈이 오는 것은..
마술을 부리듯 밤새 세상을 바꾸어 놓아
외롭고 허전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함은 아닌지..
양말을 걸어놓고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이 겨울은
소망을 하늘에 기원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을 것입니다.
그 기도가 눈이 되어 내려온 것일까요
아니면 알았다고 하늘이 대답하는 것일까요
시나브로 함박눈이 쌓여갑니다
아침에 눈뜨면 또 다른 세상..
이렇게 한순간에 세상을 달라지게 하는 것은
눈의 신비가 아니면 가능하지 않겠지요
손에 만지거나 햇살이 닿으면 녹아버리는 안타까운 눈..
그러므로 눈은 우리들의 영원한 꿈과 같습니다


이마 흰 사내가 신발을 털고 들어서듯
눈발이 마루까지 들이치는
어슴푸른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마루에 나앉아
밤깊도록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설탕을 타마신 막걸리는 달콤 씁쓰레한 것이
아주 깊은 슬픔의 맛이었습니다
자꾸자꾸 손목에 내려 앉아
마음을 어지럽히는 흰 눈막걸리에 취해
이제사 찾아온 이제껏 기다려 온
먼 옛날의 연인을 바라보듯이
어머니는 젖은 눈으로
흰 눈, 흰 눈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초저녁 아버지의 제삿상을 물린 끝에
맞이한 열다섯 겨울
첫눈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며
나는 다가올 첫사랑을 기다리며
첫눈 내리는 날이면
댓잎처럼 푸들거리는 눈발 속에서
늘 눈막걸리 냄새가 납니다


 

 

-달콤한 인생/권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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