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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미내다리

by 류.. 2005. 9. 13.

 

 

 

▲ 충남도 유형문화재 11호 미내다리


원목다리를 떠나 금강의 지류인 강경천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강경천은 연산면 신암리에 위치한 함박봉과 그 주변 산지에서 발원하여 금강에 흘러드는 길이 7.5㎞의 하천이다. 이 강경천을 '미내(渼奈)'라고 부른다.

채운교를 지나 강경천 둑을 따라 마치 한 마리 황복처럼, 웅어처럼 거슬러 올라간다. 햇살이 한껏 허리를 낮추더니 수양버들 허리께로 내려가 머문다. 미내다리에 당도한 것은 벌써 논산 평야를 지나버린 태양이 강경포구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강경 토호 세력들의 재력을 상징하는 미내다리

▲ 강경천 둑과 나란히 서 있는 미내다리


미내다리는 둑과 나란히 놓여 있다. 미내다리는 강경천을 건너가는 다리가 아니다. 강경천 옆구리에서 갈라져나온 지류를 위해 세워진 다리인 것이다.

장대석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길이 30m, 폭 2.8m이니 원목다리 길이의 거의 두 배 가량이나 폭은 거의 비슷한 편이다.

▲ 미내다리 홍예의 이맛돌


다리의 중간 홍예 이맛돌에는 눈은 마치 장승의 눈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모양과 갈기가 있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다리 옆에 있었으나 지금은 부여박물관 뜰에 옮겨져 있는 은진미교비에는 이 다리의 역사가 새겨져 있는데 비에 따르면 미내다리는 조선 영조 7년(1731)에 강경촌에 사는 석설산과 송만운 등이 재물을 추렴하여 1년 만에 완공했다고 한다. 당시 강경 지방 토호들의 재력을 능히 짐작할만한 대목이다.

다리에 얽힌 여러 가지 곡절들

미내다리는 1998년에 완전 해체되어 2003년에 복원되었다. 채운면 삼거리에 사신다는 김덕례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5·16이 났던 이듬해 논산 훈련소 연대장이 다리의 장대석들을 훈련소 정문으로 쓰려고 실어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연대장이 불의의 변을 당해 죽어 버리게 되니 무슨 액이라도 닥칠까 봐 겁먹은 군에서 장대석들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다리에 숨은 곡절이 만만치 않음을 말해 주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이야기 끝에 할머니는 미내다리를 자기 나이대로 왔다 갔다 하면 오래 산다고 덧붙이셨다. 어쩌면 할머니에겐 정월 대보름날이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답교놀이에 얽힌 아롱다롱한 추억이 있는지도 모른다.

다리는 아름다운 소멸을 꿈꾼다

▲ 노을에 젖어가는 미내다리 풍경


황산나루 쪽의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갔다. 다리에도 저녁놀의 붉은 빛이 은은하게 비쳐들었다. 다리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미내다리는 아름다운 소멸을 꿈꾸는 중인지도 모른다. 소멸을 꿈꾸는 다리에, 소멸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저녁놀이 장려하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곳 논산·강경 일대에는 죽어서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면 "너는 이승에 살 때 개태사의 가마솥, 관촉사의 미륵불, 강경의 미내다리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시왕산에 사는 염라대왕이 미내다리의 저녁놀을 본 적이 있다면 이렇게 묻지 않을까. "너는 살아 있을 때 미내다리의 저녁놀을 본 적 있느냐?"고.

▲ 다리를 밟고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두 사람


저녁놀을 아는 사람은 슬픔을 아는 사람이다.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느껴본 사람이다. 나는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저녁놀에 관한 시 한 편을 꺼내 읽어 내려간다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서
강물이 사라지는 쪽 하늘 한 귀퉁이를 적시는
노을을 자주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둘 다 말도 없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애와 나는 저무는 세상의 한쪽을
우리가 모두 차지한 듯 싶었습니다
얼마나 아늑하고 평화로운 날들이었는지요
오래오래 그렇게 앉아있다가 보면
양쪽 볼이 까닭도 없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었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붉은 노을 때문인 줄로 알았습니다
흘러가서는 되돌아 오지 않는 물소리가
그 애와 내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그애는 날이 갈 수록 부쩍 말수가 줄어드는 것이었고
나는 손 한번잡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손가락으로 먼산의 어깨를 짚어가며
강물이 적시고 갈 그 고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랑이었습니다
강물이 끝나는 곳에 한없이 펼쳐져 있을
여태 한번도 가보지 못한 큰 바다를
그애와 내가 건너야 할 다리같은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날마다 어둠도 빨리 왔습니다
그애와 같이 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하고 생각하며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늘 어찌나 쓸쓸하고 서럽던지
가시에 슴이 따끔거리며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애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을 포개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애의 여린 숨소리를
열 몇살 열 몇살 내 나이를 내가 알고 있는 산수공식을
아아 모두 삼켜버릴 것만 같은 노을을 보았습니다
저물 무렵 그애와 나는 강둑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세상을 물들이던 어린 노을일 줄을
지금 생각하면 아주 조금 알것도 같습니다

- 안도현 시 '저물 무렵' 전문



쇠락한 포구의 황혼 속에 서서

▲ 강경 포구의 저녁 으스름


논산천이 금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작은 포구 강경. 황산나루에 이르니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한때 '1원산 2강경'이라 해서 전국 2대 포구로 꼽히던 강경. 쇠락한 도시의 저녁은 유난히 쓸쓸하게 다가온다.

언젠가 부여에 가면 볼 것이 없더라고 투덜대는 친구에게 "망한 나라에선 황혼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문화재가 아니겠느냐?"고 설레발을 친 적이 있다.

황산 나루에서 마지막 스러져가는 선혈빛 노을을 오래도록 지켜 보고 서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간 사라진다. 그러나 너무 슬퍼할 것은 없다.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빈터에는 오롯이 역사가 채워지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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