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맘때면 완주군 동상면 어느 마을에서나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감덕'을 볼 수있다. |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완주군 동상면은 마을 전체가 주황빛이 된다. 이 마을 어느 집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감덕(감 건조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감 때문이다.
뒤로는 운장산, 앞으로는 대아호와 동상저수지에 둘러싸인 동상면은 마을 전체가 곶감 특산지다. ‘씨 없는 곶감’으로 유명한 동상곶감이 생산되는 곳이다.
동상곶감은 상주나 영동곶감처럼 농장에서 키운 감으로 만들지 않는다. 운장산에서 딴 노지 감을 쓴다. 노지 감도 보통 것이 아닌 씨 없는 고종시다. 그런 이유로 동상곶감은 상주 영동곶감에 비해 생산량은 적지만 높은 가격대로 팔리고 있다.
서른 걸음에 감나무 한 그루, 하루에 지게 두 짐
동상 곶감마을은 한 군데가 아니다. 이곳에서 ‘곶감마을을 찾겠다’며 마을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봤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대답하는 사람들마다 다른 마을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동산면은 신월리, 대아리, 사봉리, 수만리 등 4개리 17개 자연마을로 이뤄졌는데 모든 마을이 곶감마을이다. 동
상면에 들어선 순간 곶감마을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다.
곶감은 감을 말려 만드는 것이니만큼 감의 질이 무엇보다 최우선이다. 동상곶감의 주재료는 자연산. 동상면 일대 운장산 줄기 이곳저곳에 산재한 고욤나무와 돌감나무에 접붙여 재배하는 감나무는 2만8000여 주에 이른다.
산에서 직접 감을 따야 하기 때문에 동상곶감을 만드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 감들이 죄다 직접 산에서 전지(감 따는 데 쓰는 긴 장대)로 일일이 딴 것이여. 서른 걸음마다 감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고 보믄 되야. 드문드문 하나씩 있어서 감 따기가 까다로와. 요즘은 산에 길을 내 포도시 트랙타나 사륜구동 트럭이 들어가긴 하지만 어차피 지게 지고 따야 혀. 첨부터 끝까지 지게로 하면 하루에 두 짐이나밖에 못 지어 와.”
곶감 일을 한 지가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까마득하다는 박영수(55)씨의 설명이다. 감나무는 자연상태에서는 보통 알고 있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 일일이 사람의 손을 타야 ‘감 맛’이 나온다. 동상면의 감나무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산인 것이다.
꼭지에 제비입 두 개, 씨없는‘고종시’
“동상곶감은 거의 다 고종시로 만든 것이여. 고종 임금이 먹고 탄복을 했다고 해서 고종시라 그러제. 모양도 좋고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씨가 없는 것이 특징이여. 고종시로 만든 동상곶감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려면 감꼭지를 봐야 돼. 꼭지에 제비입 두 개가 있는 거 보이지. 고종시라는 표식이여 이것이.”
20여 년 동안 곶감 일을 해 온 정한상(45)씨. 동상곶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 곳에서 수확되는 감은 85% 이상이 고종시다.
“동상곶감이 좋은 것은 다 지형 덕이여. 이 곳이 고지대다 보니 해발 500∼600m에 감나무들이 자라고 있제. 높은 데 있는 것은 8부능선에도 있당께. 화학비료도 안 하제. 농약도 안 치제. 먹어보믄 젤리처럼 쫀득쫀득하고 찰지제. 경쟁상대가 없어.”
씨가 없으니 먹기는 편하다는 것도 장점. 하지만 건조 과정에서 크기는 많이 줄어든다고 한다.
올 가을 정씨가 수확한 감은 1동. 1동은 100접, 1접이 100개이 1동은 1만개인 셈이다. 개인에 따라 1∼40동까지 곶감을 만든다. 이날은 정한상씨가 동네 아주머니들을 모아 놓고 며칠이 걸려 힘들게 수확한 감을 깎는 날이다.
아주머니들은 한가운데 감을 한 무더기 쌓아놓고 빙 둘러앉아 손으로는 감을 깎고 다른 한 편으로 서로 입심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감이 깡깡하든 물컹물컹하든 한 방에 깎아야제. 그것도 껍닥이 끊긴다는 것은 우세스런 일이여. 한번 더 칼질해서 다듬어 싸코 그러면 요 일 못하제. 요 많은 감을 고렇게 서툴게 해 갖고 언제 다 깎겄어.”
“요 감 깎는 일은 특히 초보자는 사절이여. 요 맘 때만 하는 일인디 언제 서툰 사람 갈쳐서 일한당가. 우리 같은 아줌마 엄마들은 다 원래부터 기술을 타고 났제. 요 봐. 몇 초나 걸린가 시어볼랑가?”
“감 깎는 소리 들린가. 처음 듣제? 이 소리가 ‘사삭사삭’하고 좋으면 그 해 곶감이 잘 되는 것이여. 감이 푸석푸석하면 요 소리가 이라고 안 나거든. 푸석푸석한 감이 좋을 리가 없겄제.”
▲ 마을 아주머니들 빙 둘러앉아 손으로는 감을 갂고 다른 한편으론 입심자랑. |
깎을 때 ‘사삭사삭’ 소리나야 곶감 잘돼
한쪽에서는 감을 부단히 깎고 한 쪽에서는 감을 부단히 감덕에 건다.
“감을 걸 때도 조심히 걸어야 돼. 지들끼리 붙어 불믄 곰팡이가 쓸어 불거든. 예전에 노끈으로 묶어서 걸 때는 노끈이 감을 파들어가서 곰팡이가 슬었지. 요즘은 감꼭지를 빨래집게처럼 잡는 것이 나와 그런 것은 거의 없제. 그나저나 날씨가 좋아야 할 텐디.”
감을 깎고 감덕에 걸고 나면 그 다음은 날씨가 관건이다. 감이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비가 와 날씨가 습하거나 기온이 높으면 금세 곰팡이가 슬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감을 늦게 깎으면 낮은 기온 때문에 건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감을 깎는 날을 택할 때 점쟁이 못지 않은 선견지명이 필요하다.
보통 찬 이슬이 맺혀 감이 물렁해지는 한로(寒露·10월8일) 무렵까지 감을 따낸 뒤, 무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10월23일)이 지나면서 곶감을 말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래저래 이상기후를 살다 보니 감 깎는 시기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한다.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예전에 필요 없었던 저온 저장고도 6년 전 면에 개설됐다.
“고종시는 원래 씨가 없는 종자입니다. 하지만 최근 수확되는 감 10개 중 4개는 씨가 있을 정도로 기존 고종시의 진면목을 잃어가고 있어요. 교통이 발달하고 사람 왕래가 잦아지다 보니 재래 고종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또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곶감에 비해 월등하게 우수한 품질인데도 소비자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어요.”
고산농협 동상지소 최상원(72) 지소장은 설탕처럼 달고 부드러운 동상곶감의 명성을 지키고 높여나가겠다고 했다 .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늦가을의 노을을 닮은 감덕의 주황빛 감들.
운장산 줄기 타고 불어오는 맑은 산바람에 한 달포쯤 마르고 나면 하얗게 분가루가 배어나오는 동상곶감으로 다시 태어날 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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