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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위안

by 류.. 2005. 3. 26.

 

 

 

늦은 시간.. 가까이 사는 후배를 불러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고

한동안 쌓인 이야기들 술 한 잔 곁들여 나누다가 들어왔다

요사이 마음이 무겁고 어수선해서 뭔가 털어 내는 의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가장 단순해지고 싶을 때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다

사고가 복잡하지 않은 사람.. 머리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넣고 있지 않은 사람..

일과 가정 그리고 주말 산행 그것말고는 어떤 고민도 불필요한 평범한 가장..

러나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누구의 부탁도 쉬이 거절하지 못하는..

밥이 아니라 술, 혹은 그보다 더한 것을 함께 하자고 해도 선뜻 응할 사람

인간적 방황, 대화를 위한 대화, 그 어느 것도 원하는 만큼일 뿐

그 이상과 그 이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

 

때로 소심한 부분도 보이지만 그것은

그를 가장 그답게 하는 힘으로 작용된다

겉모습은 매우 단정하나 생각은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조금만 취해도 흔들리는 나와는 달리... 술을 좋아하지만

취한 모습으로 흔들리는 걸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다

술을 먹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사람이 바로 그다

 

나는 그에게 내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때 나도 모르게

정직성이 자주 발동하는데 내가 말하는 정직이란

내 자신조차 견딜 수 없어하는 모순 같은 것들이지만

그는 참 푸근하게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고 수용한다

나는 가끔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그와 길고 긴 대화를 한다

그것은 소통에 굶주려있을 때 취하는 일종의 방어적 행동이라는 걸

선배인 나도 알고 후배인 그도 안다

 

갑천변을 명상하듯 나란히 걷는 것도 가끔 있는 일이다

인생의 담론은 승부가 없는 무승부 게임 같은 것이라고 말했을 때

함께 고개를 끄덕여 온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처럼 그는 늘 매사에 투명하다

착각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렇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용감하지만 용감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건 나다 어제 저녁 나는 후배에게

남해의 인상 깊었던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거기서 머무는 동안 어촌마을에서 경험한

미세한 마음의 파장에 대해서도 대화는 이어졌다

모두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모두 다 이해하고 이해 받고 있는 듯한 위안...

그런 사람이 가까이 산다는것은 내겐 큰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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