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 빈 자리...

by 류.. 2004. 11. 26.

 

 

      미루나무 앙상한 가지 끝 방울새 한 마리도 앉았다 날아갑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그 자리 방울새 한 마리 앉았다 날아갑니다 문득 방울새 한마리 앉았던 빈 자리가 우주의 전부를 밝힐 듯 눈부시게 환합니다 실은, 지극한 떨림으로 누군가를 기다려온 미루나무 가지의 마음과 단 한 번 내려앉을 그 지극함의 자리를 찾아 전 생애의 숲을 날아온 방울새의 마음이 한데 포개져 저물지 않는 한낮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미세한 떨림을 가진 미루나무 가지 하나 있어 어느 흐린 날, 그대 홀연히 앉았다 날아갔습니다 그대 앉았던 빈 자리 이제 기다림도 슬픔도 없습니다 다만 명상처럼 환하고 환할 뿐입니다 먼 훗날 내 몸 사라진 뒤에도 그 빈자리, 그대 앉았던 환한 기억으로 저 홀로 세상의 한낮을 이루겠지요 유 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바라기  (0) 2004.12.10
12월의 엽서  (0) 2004.12.04
내게 당신은...  (0) 2004.11.23
배가 고픈 여자  (0) 2004.11.11
빗길  (0) 2004.11.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