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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들꽃...

by 류.. 2004. 11. 1.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대전근교의 아버지 산소를 찾았습니다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지만.. 일단 들어서면 인가라곤 볼 수 없는 깊은 골짜기.. 가는 길에 악보처럼 흙길에 찍힌 경운기 바퀴자국이 인적 끊긴지 오래 됐다는걸 말해주고 있었지요 무논에는 모가 제법 푸릇푸릇 자랐고.. 후미진 고랑고랑마다 이름 알 수 없는 색색의 들꽃들이 피었습니다 산자락에서 회색빛 안개 피어오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슬픈 산새소리가 허황한 시간 재단하는 시계소리와 같았습니다 자식들 기다리다 아버진 무료하셨을겁니다 아버지가 기다리며 피워문 담배의 불씨처럼, 무덤가 들꽃들은.. 풀숲에 남몰래 떨어져 반짝이다가 바람을 만나 무덤가를 붉게 태웠을지도 모르지요 어머니가 잡초를 뜯으면서 우시데요 흰머리를 뽑아드리듯이... 홀로 된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고운 꽃이란 것을 아버지는 아시련만 어머니는 알지 못하고 꽃 진 봄날, 아버지 무덤가에 일찍 저버린 꽃을 망연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2002.5월 들끝에서.. 울면서 조시를 쓰던 날들은 가고 다시는 조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머리띠를 다잡아 묶던 날들도 가고 우리 사랑 헛되지 않았는데 꽃도 열매도 사라져 우리 곁에 없고 돌아보면 빈손을 흔드는 몇 개의 물푸레나무, 나뭇잎들 우리 청춘의 가장 빛나던 시절을 바쳐 내 가장 소중한 것들 아낌없이 다 바쳐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던 뜨거운 날들은 가고 잘못 걸어오지 않았는데 무슨 죄나 지은 듯 고개 꺾고 서 있는 들 끝의 패랭이꽃, 패랭이꽃들 도 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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