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
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
철길은 저렇게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기차는 또 누구의 생에 시동을 걸었는지 덜컹거린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기차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며 쏘아버린 화살이며 내뱉은 말이
지나간 기차처럼 지나가버린다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 정처가 없다
기차는 기다려보니 알겠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차역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차를 지나친 나였는지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는 것들이여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지나간 기차가 나를 깨운다
기차를 기다리는 건
수없이 기차역을 뒤에 둔다는 것
한순간에 기적처럼 백년을 살아버리는 것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도 기차역을 지나치기 쉽다는 걸
기차역에 머물기도 쉽지 않다는 걸
천양희
♬ 춘천역 / 이 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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