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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사람 사는 세상

by 류.. 2015. 10. 24.

                                                                                                                                                                                           송호리(충북 영동)의 가을

 

 

      세월이 흐른다는 말은 사람이 바뀐다는 말이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곁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바뀌고,
      옛날의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다.
      시간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사람들은 물살에 밀리듯이 시간에 밀린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로 가슴이 설레었다.
      짝이 바뀌고 담임선생님이 바뀐다는 사실이 우리를 흥분케 했다.

      골목에서 흙장난하던 소꼽친구와 사춘기 때 고민을 털어놓던 친구가 달랐고,
      함께 손을 잡고 밤벚꽃놀이를 즐기던 친구가 달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일은
      곧 새로운 얼굴과 만나는 일이었다.

      취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일과 함께 새로운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인연, 새로운 질서, 새로운 관계를 익히는 일이다.

      반상회에 가면 가끔 모르던 얼굴이 새로 보인다.
      익숙하던 얼굴이 떠나고 낯선 사람이 이사를 와서 이웃이 된 것이다.
      벌써 내 곁에도 세상을 하직한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있어서 주변의 얼굴들이 자꾸 새롭다.

      물이 흐르면서 윗물과 아랫물이 섞이고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헤어지기도 하듯이,
      벼랑을 만나면 뛰어내리고 큰 바위를 만나면 산산조각 깨어지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흐르던 사람들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별을 길들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무섭다는 말은 결국 사람이 무섭다는 말이다.
      세상이 험하다는 말은 결국 인간성이 험하다는 말이다.
      천둥벼락이 치고 전염병이 창궐할지라도 우리 곁에
      따뜻하고 든든한 사람이 있어 서로 의지하여 사랑을 나눌수 있다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있으랴.

      기화요초 만발한 무릉도원이라도
      함께 감동할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을 사랑한다.
      그 중에 내 기쁨을 나처럼 기뻐하고
      내 발전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몇몇 사람만 곁에 있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살맛 나는 세상도 지옥 같은 세상도 사람들이 만든다.
      우리는 사람 사이에서 늘 사람을 그리워하며 산다.
      때로는 사람에게 부대끼는 일이 지겹다면서
      사람을 피하여 멀리 산수를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며칠이 못되어 사람들에게 돌아온다.

      자연도 경치도 사람을 제외하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 이향아 에세이 '쓸쓸함을 위하여' 중에서


     

     

                                                                                                                                                                                 영국사(충북 영동)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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