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의 구조를 염두에 두고 뼈에서 신중하게 살을 발라내고 있던 요셉의 앞에 불룩한 배에도 아랑곳없이 꼭 달라붙는 검은색 복장을 맞춰 입은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들이닥쳐 빨리 단체석을 만들어달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그것은 혼자 4인석을 차지하고 있던 요셉을 몹시 불안하게 만드는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게다가 실컷 단체활동을 하고 난 뒤까지라도 잠시라도 헤어지지 않으려는 그들의 패거리의식을 요셉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과 다른 개인적 선택을 하려면 반드시 뭔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이 나라의 삶 자체가 무식한 단체생활이라는 생각이 들어 신물이 났다.
메뉴를 고를 때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 사이에서 고민했던 요셉은 그들이 두가지를 모두 주문하여 사이좋게 나눠먹는 것을 보고 더욱 화가 치밀었다.
–p89
......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면 상대는 으레 공감의 뜻인 줄 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 듣기 싫은 말을 빨리 끝내도록 독려하기 위한 행동이다.
끝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시작한 의례적이고 지루한 회의에 임할 때는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졸음을 쫓을 수 있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였다. 그렇게
해서 회의가 빨리 끝나도록 현실 개선의 의지를 불태워봤자 결과적으로 그것은 회의 때보다 조금도 나을 것 없는 재미없는 회식시간을 앞당기는 일일
뿐이라는 사실은 부조리이자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p144
......
요셉이 역겨운 것은 발언권이 없는 죽은 자를 이분법적 틀에 집어넣어 루저로 만들어놓고 그를 동정함으로써 자신들이 공의(公義)의 편에 서 있다고
믿는 자들의 기만적 패턴이었다. 누군가를 약자로 만드는 것은 강자가 아니라 바로 그처럼 강약을 나누는 틀이고 그리고 그 틀에 스스로 편입되는 자들이다.
–p171
- 은희경, <태연한 인생> 중에서
작가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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