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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갈매나무라는 나무

by 류.. 2012. 7. 3.

 

 

 



일생 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살아온 꼭 그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는 것을 그저 아래로 드리우기만 할 뿐
그 그늘 속에 누군가 사랑하며 떨며 울며
해찰하며 놀다가도록 내버려둘 뿐
스스로 그늘 속에서 키스를 하거나 헛기침을 하거나
눈물을 닦거나 성화를 내지 않는다는 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말과 침묵사이, 혹은 소란과 고요사이
나무는 저렇게 그냥 서 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듯 보이는
저 갈매나무가 엄동설한에도 저렇게 엄하기만 하고
가진 것 없는 아버지처럼 서 있는 이유도
그늘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빈한한 지붕 끝처럼 서 있는 저 나무를
아버지, 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때로는 그늘의 평수가 좁아서
때로는 그늘의 두께가 얇아서
때로는 그늘의 무게가 턱없이 가벼워서
저물녘이면 어깨부터 캄캄하게 어두워지던
아버지를 나무, 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눈 내려 세상이 적막해진다 해서 나무가 그늘을 만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쓰러지지 않는, 어떻게든 기립자세로 눈을 맞으려는 저 나무가
어느 아침에는 제일 먼저 몸 흔들어 훌훌 눈을 털고
땅 위에 태연히 일획을 긋는 것을 보게 되는 날이 있을 터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 안도현

 

  정확한 가사는 떠오르지 않지만, 나무는 아무리 님이 그리워도 님에게 갈 수 없어 혼자 꽃 피우고 혼자 운다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얼마전 누군가를 너무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그의 사랑을 거부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차입은 영혼. 사랑을 하고 싶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사람에겐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겨울이다. 그의 영혼은 추위에 바들바들 떤다. 추위에 떠는 그 영혼을 위해 나는 그날 하루를 비우기로 했다. 그 마음속에 굳은 나무 한 그루 심어주기 위해.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랑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어렵다. 그 사랑은 뜨거울 때는 그 어떤 사랑보다 뜨겁다가도 식을 때는 또 뜨거울 때 못지않게 급속도로 차가워진다. 그러니, 식어버린 사랑앞에서 사람들은 하염없이 몸을 치떠는 것이다.

 

나는 후배에게 나무를 말했다. 지금 눈을 들어 창밖의 나무를 보라고. 창밖에 나무가 보이지 않으면 밖으로 나가라고. 가서 차라리 나무를 붙잡고 울어버리라고. 나무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쪼여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잎을 피우고 가지를 벌린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리고 비가오면 비를 맞는다. 네 마음에도 그런 나무 한 그루 심으라고. 

 

영혼을 뒤흔드는 사랑, 그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난. 그렇다. 그것은 인생이 입을 수 있는 수난의 한 종류다. 그러면서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상처 입으면서.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상처 입어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을. 나무처럼. 상처 입으면 처음에는 아플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살아가는 동안 일어나는 상처들을 거부할 수는 없다. 시간이 가면 상처는 아물 것이다. 때로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채. 그것이 자연이다. 상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사랑의 실패도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일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것. 다시 한 번 말하노니, 어쩌겠는가. 그것이 산다는 것이다.  

 

시골에 살 때, 아름다운 자연풍광과는 상관없이 나 또한 사람으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이 잇다. 상처가 너무 아파서 나는 도대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이 떠오르면, 나는 마치 불에 덴 사람처럼 머리가 온통 화끈거리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까지 되었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을 미워하는 내 마음이 내몸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몸이 힘들어서라도 나는 어떡하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이 나무 심기였다. 나는 묘목장에 가서 내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많은 나무를 샀다. 나는 '미친듯이' 땅을 파고 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땅에 심긴 그 순간부터 외로워 보였다.  사람이 옮겨 주지 않은 한 나무는 이제 한평생을 심긴 그곳에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바람에 파르르 떠는 나무. 가냘픈 어린 나무. 그 여린 생명을 심어놓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내 안에 심긴 어떤 나무 하나를 생각하면서. 

 

나무 곁에 가면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이 행복해진다. 시인 백석은 눈 오는 남신의주 유동마을에서 '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김남주 시인의 미망인은 '빈들에 나무'를 심고 또 심으며 시인의 부재를 견디었다. 그렇게 시인의 부인은 나무를 심음으로 자연을 닮아갔다. 사람이 자연을 닮아 가면, 외롭지 않은 게 아니라,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님이 그리워도 님에게로 갈 수 없어 외로운 나무는 그렇게 '살아 있어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한다. 나무는 너무나 외롭게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외로움은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외로움을 잘 견뎌내는사람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외로움을 받아들이자. 외로우면 외로워해버리자. 나무가 더위와 추위, 바람과 비를 고스란히 그냥 맞아 버리듯이 내게 다가온 그 어떤 종류의 수난도 일단은 받아들이고 나면 그때부터 마음 속에, 백석시인의 ' 그 굳고 정한 갈매나무' 한 그루가 자라날 것이다.

 

 

-마음속에 심는 갈매나무/소설가 공선옥
 


Hendel, Ombra Mai fu(그리운 나무그늘이여)/Cecilia Barto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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