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고 있다고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싸늘해지는 마음의 창들 꼭꼭 걸어 잠그고 말없이 겨울산을 오릅니다.
쓰라린 세월 가슴에 안고 있는 침묵의 바위들이 어떻게
단련돼서 생긴 응어린지를 구태여 말하진 않겠습니다.
내 어둠 깊은 곳에 어떤 휘황한 기쁨의 말들이 그 소란함 묻고 잠들어 있는지도..
나 모를 바람은 천길 벼랑 위에서 뛰어 내리고,
갑자기 눈앞을 막막히 가로막는 저 얼어붙은 폭포!
흐르지 않음으로 더 큰 흐름을 분명히 보여주는 저 눈부신 정신의 골격!
무릎의 관절이 미세하게 떨리고,
온몸의 땀구멍들이 땀을 토해내며 이 만남의 감격에 회답합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겨울산은 빨리 저뭅니다.
저물기 전에 가야할 길이 멉니다.
오랜 나무 제풀에 쓰러져 산불 일어나는 낡은 어둠 속에서 잠시 멈춰서
숨을 돌리는 동안 마음 속 불 켜진 한 집이 애절한 그리움으로 눈을 뜹니다.
길목에 깔린 그리움의 돌부리들에 걸려 휘청이면서도
몇 발자국 더 오르니, 아, 내 넋의 그리운 산봉우리!
무명옷 몇 겹 뚫고 맨살로 돋아난 별들!
오냐, 내 새끼 참 오래도 어둠 속을 참고 걸어왔구나!
장석주시인 <어떤 길에 관한 기억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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