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구봉산에 올랐다. 아파트 창에서 늘 바라보던 산이지만 평소 운동부족인 나를 이 가을산은 숨 가쁘게 한다. 아니 슬프게 만든다 단풍 든 이파리들을 보고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아름답다고, 그래 아름답지. 그런데 나는 왜 아름답게만 보이질 않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뭇잎에는 고통과 불행의 흔적이 확연히 보인다 죽음의 색깔.. 아니 죽음을 앞둔 색갈 원색부터 3차원의 색까지.. 단풍은 온몸으로 마지막 빛을 뿜어낸다 사람도 죽을 때.. 속에 있는 힘을 모두 바깥으로 쏟아내고 죽는다는데 하물며 저깟 이파리들은 오죽할까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잎새들이 살아온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행복하게 살아온 놈들은 때깔도 좋게 물들어 있고 모진 비바람에 악착같이 나무를 붙들고 있는 놈들은 때깔도 곱지가 않다 이제 곧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뭇잎에 남아있던 생명은 혹독한 겨울을 넘기기 위해 땅속 깊이 뿌리로 숨을 것이다 그처럼 나도 무언가 준비를 할 시기가 된 걸까 이 가을날, 낙엽을 볼 때 서글퍼지는 걸 보면 가을산처럼 나도 늙어가나 보다
200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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