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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봄날은 간다

by 류.. 2010. 3. 20.

    대청호 카페 '뿌리 깊은 나무'

  

 

해가 많이 길어졌는지..
창틈으로 스며드는 눈부신 햇살에
이른 아침.. 눈을 떴습니다

 

유난히 눈비가 많은 봄..
지난주에도
하루는 흰솜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하루는 한숨처럼 바람이 불며 눈물 같은비가 뿌렸지요
이곳 대청호엔 수위가 많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비가 그치면 봄꽃이 열병처럼 번진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들뜹니다
온갖 봄꽃이 피면 황폐한 이들의 가슴에도
그 어떤 꽃이 필지 모르지요 

 

그런데..
봄은 너무 짧아서..
이렇게 비오고 바람 불고 황사가 지나가면
봄날은 이미 저만큼 가고 있을 것이고..

내 안에 봄이 오기 전 봄날이 갈까...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내가 보낸 삼월을 무엇이라 해야 하나
이월 매화에 춘설이 난분분했다고,
봄비가 또 그 매화 봉오리를 적셨다고
어느 날은 춘풍이 하도 매워
매화 잎을 여럿 떨어 드렸다고
하여 매화 보러 길 떠났다
바람이 찬 하루는 허공을 쓸어 담듯
손을 뻗어 빈손을 움켜쥐어보며
종일 누워 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저 한 순간과 다음 순간 사이의 빈틈에서
별똥별이 두 번이나 떨어졌다고 해야 하나
무슨 귀하고 애틋한 것이 지상에서 사라지는지
별똥별이 몸을 누이고 있었던 그 적막한 날의 客窓으로
한 번은 길에 또 한 번은 짧게 안으로 쏟아지듯
스러졌다고 말해야 할지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내가 알 수 없는 그 일이 여러 날 
어릿어릿 사람을 아프게 했다고 할까

내가 보낸 삼월은 그리하여
그늘도, 꽃도, 적막함도, 가파름도 함께였는데
삼월이 간다고, 괜히 봄비 내리는 저녁을 탓한다네
별똥별이 떨어진 그날 무엇이 내게로 와
사라진다 말할 건지
긴 저녁의 빗소리로 삼월을 마저 보내면
나는 또 누구의 눈앞에서 별똥별 같은 것이 되어

삼월이 아주 간다고 그렇게 말하며 스러지게 되는 걸까
내게 그리움이 찾아들었다고,
서러움이 다시 시작 되었노라고
알 수 없는 가파른 그 높이를 천천히 한 걸음씩
다 걸어가보아야 할 거라고
나는 내게 나지막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속삭일 뿐


-봄날은 간다/조용미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이 가슴으로 절절하게 스며들어 올 때는
이미 우리 삶은 봄날이 아니다.
사랑도 우정도 정점을 지나가야 가슴에 절절함이 박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떠나보내고 떠나 와야 한다.
머물러 있는 것들은 언젠가 흐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서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늙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늙은이 하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젊은 날의 나"가 나를 떠났음이다. 
 
연분홍 치마, 옷고름, 산제비, 성황당도 우리 곁을 떠난 것들이다.
"알뜰한 그 맹세"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 몇 번의 봄을 맞을 것인가.
또 한 걸음 멀어진 내 청춘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나 지난 날은 눈물에 젖어있으니,
눈물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리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는 봄이 서러워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오늘 저 비에 눈물 보태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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