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短想

고요

by 류.. 2008. 11. 19.

 

 

고요함, 그 참된 평화로움을 제대로 맛보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들은 한적한 두메산골나 깊은 산사를 먼저 떠올리겠지요
또 어느 때가 가장 고요할까요? 하면, 깊은 밤 시간대가 우선 생각날 겁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웬만한 도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느 곳에도
고요한 심야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밤이라고 해서 호롱불 끄고 모든 활동 멈추고, 사람도 만물도
잠이 드는 저 옛날은 이제 없어졌습니다
도시의 빌딩마다 불은 대낮처럼 밝혀졌고 시골의 가로등도 눈 부릅뜨고 있지요
공장의 기계들은 쉼 없이 돌아가고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분주히 오갑니다
거리의 자동차도 밤이라고 해서 한가롭지만은 않고요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다 보니 사람들은 더욱더 고요한 곳
고요한 시간을 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삶에 쫓기고 있으니
그런 시간을 갖기란 좀체 어렵지요 하루하루 미루어가다 보면 자신이 시간의
홍수에 떠밀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거지요
하루라도 함께 흐르지 않으면 뒤처지고 생계에 위협을 받을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합니다
.

문득 다 떨치고 고요를 찾아 인적 하나 없는 어느 곳으로 가고 싶지만 이 나라가 온통 도시화로
발전(?)해가고 있는 지금은 선뜻 찾아갈 곳이 없습니다 산사의 승려들을 부러워도 해보지만
조금만 이름 있는 절은 사람들의 발길이 여느 도시 찜 쪄먹을 정도니까요
‘여기는 묵언수도하는 도량이오니 정숙,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문구가
웬만한 절이면 다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가지요


시끄러운 것들로부터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일이고요
분주히 살아가는 삶, 욕망을 향한 집착은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우리는 사색하고, 자신과 이웃을 돌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실행 못한 그것을 또 괴로워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고요한 시간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은 한생을 살아가면서 가끔
삶을 추스르는 일이지요  그래야 노후의 회한도 줄어들 겁니다

나는 안답니다
남이야 웃겠지만 ‘천하의 낚시꾼임’을 자부하는 나는 고요의 참맛을 안답니다

전라도 어느 깊은 산골에 있는 작은 저수지
그곳이 나를 고요 속에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자리랍니다
찻길에서도 한참 걸어야만 당도하는 곳이어서 자동차 소리는 말할 것 없고 인기척도 없습니다
너무 호젓해서 으스스한 느낌은 처음 얼마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서 불쑥 신호를 보내오면 그곳에 갑니다
그곳엔 나를 잡아끄는 어떤 기운이 있습니다

물론 낚시를 던져 넣고 수면을 주시하며 물속의 생명들과도 소통을 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산과 물의 풍경 속에 하나의 점일 뿐 문명의 때에 찌든 인간이 아닙니다
나는 이런 때 절대 고독, 완전 평화, 홀가분한 자유를 누립니다
고요 속에 있는 동안은 푸른 숲을 호흡하고 푸른 숲과 대화하는 시간이지요
인간은 숲과 멀어지면서 온갖 질병을 키워왔다고 하지 않던가요


고요는 바깥 환경이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진정한 고요는 자기 내면에서 생기지요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고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제 나는 물가에서 이 마음 다스리기를 배우는 중입니다
먼저 마음의 귀, 마음의 눈을 닫는 것부터...

 

 

 

 

 

 세상의 고요


맑고 쌀쌀한 초봄 흙담벼락에 붙어 햇볕 쬐는데
멀리 동구 밖 수송기 지나가는 소리 들렸을 때


한여름 뒤란 감나무 밑 평상에서 낮잠 자고 깨어나
눈부신 햇살 아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집은 비어 있고
어디선가 다듬이질 소리 건너올 때

아무도 없는 방, 라디오에서 일기 예보 들릴 때

오래된 관공서 건물이 고궁으로 드리운 늦가을 그림자
그리고 투명하고 추운 하늘을
재판받으러 가는 호송 버스에서 힐끔 보았을 때

백미러에 국도 포플러 가로수의 소실점이 들어와 있을 때

야산 겨울숲이 저만치 눈보라 속에서 사라질 때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빈말로라도 집에 가서 자자는 놈 없고
불 꺼버린 여관 앞을 혼자 서성일 때

흰 영구차가 따뜻한 봄산으로 들어갈 때

.....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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