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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다시 강으로 가고 싶다

by 류.. 2009. 7. 21.


오늘은 하루 종일 가슴 저 밑에서 출렁이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내 가슴을 흔들고 내 몸을 흔들다가 강가 모래톱 어딘가에 나를 부려놓고 흘러가는 강물 소리. 온종일 젖어 있다가, 온종일 설레게 하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잔잔해진 강물 소리. 얼굴을 한쪽으로 젖힌 채 따뜻한 돌멩이를 갖다대고 톡톡 두드리면 귓속에서 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 강물 소리. 그 강줄기 위에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꽃잎처럼 띄워놓고 천천히 따라 내려가고 싶다. 따뜻한 모래밭에서 사랑하는 이의 무릎을 베고 누운 듯 편안하게 누워 잠시 잠이 들고 싶다. 눈을 감고 풀잎을 스치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그의 말소리를 듣고 있고 싶다. 그 말을 해본 지가 언제인지 너무도 오래된 사랑한다는 말을 강물 소리 곁에서 다시 하고 싶다. 강으로 가고 싶다.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는 노을이 너무도 아름다워 강물도 그만 노을 물이 들어버린 강가에서 나도 다시 잃어버린 감동을 되찾고 싶다. 아름다워서 아름다움을 주체할 수 없고, 외로워서 외로움을 참을 수 없고 슬퍼서 슬픔으로 하루가 다 젖는 그런 출렁임을 다시 만나고 싶다. 제비꽃 한 송이를 보아도 한없이 사랑스럽고 물새 한 마리를 보아도 가슴이 애잔해져 오던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마음 깊은 곳에서 시작하여 여린 살갗을 적시는 강물 소리를 들었다. 부드럽게 흐르면서도 오래오래 유장하게 흘러가는 물 소리, 강물처럼 맑으면서도 착해지는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편안하게 내 발걸음, 내 속도에 맞는 강물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

 

도종환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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