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함께 걷는 길이
꿈길 아닌 곳 어디 있으랴만
해질 무렵 몽산포 솔숲 길은
아무래도 지상의 길이 아닌 듯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참으로 아득한 꿈길 같았습니다.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 좋았던 나는
순간순간 말을 걸려다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속마음
서로가 모르지 않기에.
그래, 아무 말 말자. 약속도 확신도 줄 수 없는
거품뿐인 말로 공허한 웃음짓지 말자.
솔숲 길을 지나 해변으로 나가는 동안
석양은 지기 시작했고, 그 아름다운 낙조를 보며
그대는 살며시 내게 어깨를 기대 왔지요.
함께 저 아름다운 노을의 세계로 갈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으로 내가 그대의 손을 잡았을 때
그대는 그저 쓸쓸한 웃음만 보여 줬지요.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내 가슴을 저미게 할 줄이야.
몽산포, 해지는 바다를 보며
나는 그대로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그대에겐 아무 말 못했지만
사랑한다, 사랑한다며 그대 가슴에 저무는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약속들 중에서
가장 부질없고 무의미한 것은
연인들끼리 주고 받는 사랑의 약속이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거나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거나, 그런 종류의 약속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도,
그 약속이 실현될 가능성에 대한 완벽한 믿음은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사랑을 맹세하는 순간,
우리들은 '그렇게 하겠다' 가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다' 라고 소망할 뿐이다.
기대할 뿐이다.
많이 기대하고 소망하지만,
그 마음이 깊고 끔찍하다고 해서
기대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한 없는 희망은
한 없는 절망과 맞닿아 있다.
사랑 속에 이별이 존재하고,
봄 속에 겨울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의 약속 안에는 텅빈 동굴과 같은 허무함이 존재한다.
어느 쪽이 먼저 사랑의 약속을 파기했느냐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했느냐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애틋한 마음으로 약속을 나누었던 그 순간이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잊지 않는 일이다.
그 마음을 그래도 간직하고,
다시 살아가기 시작하는 일이다.
황경신
♬ Rene Froger - The Greatest Love We'll Never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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