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논산 탑정호의 카페 '엘파소'
비오는 날, 엘파소 - 탑정호수(논산)
비가 내리고
세상을 버리고 싶은
간지러움이 발작을 하면
나는 어느 누군가와 이 곳을 찾는다
누구라도 좋다 꼭 네가 아니라면
황홀한 노을 사이로 술렁이던 눈빛
깊은 호수 속으로 사라지고
청둥오리 떼지어 물살을 가른다
마주 앉은 너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나는
일직선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어
말과 말의 꽃들은 끝내 배아(胚芽)하지 못한 채
치유될 수 없는 우리의 가련한 나르시즘은
초라하다 못해 사각지대(斜角地帶)의 울짱이 된다
쉬었다 가는 곳, 엘파소
우리는 잠시도 마음 뉘이지 못하고
식지 않은 찻잔을 바라보며 일어서야 한다
저 둥글고 드넓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차가운 이성을 치유하고 싶지만
피차 그럴 수 없는 독선의 아류(蛾類)들이다
다만, 새까맣게 거꾸러지며
용솟음쳐 오르는 잉어의 지느러미 사이로
저 깊숙이 가라앉은, 너의
수면 가득 술렁이던 눈빛만이
흔들리면서, 분출하는
생명의 메시지로 떠 오르다가,
떠오르다가 사라져 간다.
윤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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