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무렵 나는 논산 탑정호 물가에 서 있다
기우는 해가 서녘 하늘을 불그레하니 물들이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리고
수면에 잔물결을 만들어놓는다
편안하고 평화롭다
대부분 나처럼 낚시를 하고 있지만...
낚시와 무관하게 지는 해를 즐기러 나온 사람도 더러 눈에 띈다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느라 뛰는 사람, 개를 끌고 나온 노인..,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
사철 조금씩 빛깔을 바꾸는 나무들에 에워싸인 탑정호의 저녁은 언제나 한결같다
이 아름다운 저수지를 나는 좋아한다
탑정호는 말없는 벗이다 점잖고 든든한 친구다
거기 존재함으로 내가 행복한 그런 대상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나의 애착은 때때로 지나치다
탑정호 물가에 서 있는 오래 된 왕버들나무 한 그루를 좋아한 끝에
나의 나무라 이름지었다
나는 나의 나무와 말을 하고 해지는 호수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것이 비록 내 감정의 일방적인 이입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호수나 나무에게 말을 하는 시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다
그렇듯 자연과 나의 교감은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견줄 데 없이 외로울 때
그 외로움을 풀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면 호수는 잔잔한 물무늬를 만들며 유장하게 또는 묵묵히 듣는다
내가 우울해하면 나무는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아 준다
내가 어떤 모습이건 그저 나를 바라보아 준다
내 말을 막지도 않고 틀렸다고 핀잔을 주지도 않는다
깊은 슬픔이나 단애에 선 듯한 절망을 토로해도
내가 스스로 추스를 때까지 그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완전히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내 편,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것
내가 죽을 때까지 변절하지 않고 내 편만 들어주는 대상이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나는 탑정호를, 나의 나무를 사랑한다
어떤 장소나 한 그루의 나무를 가슴에 품을 때
내가 가슴에 안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먼저 많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내가 먼저 많이 사랑한 끝에 탑정호는 내게 아주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해가 졌다
서녘하늘의 노을빛은 가시고 제방 위 가로등 불빛들이 수면에 붉은 기둥으로 누웠다
밤바람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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