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7-01-23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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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하며 ‘프랑스 양심의 상징’으로 존경받아 온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사진) 신부가 22일 파리의 발 드 그라스 군 병원에서 선종했다. 향년 94세.
병원 측은 피에르 신부가 폐 감염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피에르 신부는 비참한 현실과 고통, 불의에 대항하는 프랑스의 정신을 대변한 분”이라면서 “프랑스는 위대한 인물을 잃었다”고 말했다.
피에르 신부는 프랑스 바깥에선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랑스에선 ‘현대의 성인’으로 불리며 만인의 추앙을 받아 왔다. 그는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존경받는 인물’ 조사에서 매년 1위로 뽑혔다. 지난해 한 조사에선 역대 프랑스 위인 가운데 샤를 드골 대통령,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피에르 신부는 1949년 노숙자 자립 공동체인 에마위스 운동을 창시한 것을 비롯해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빈민 구호 활동을 벌여 왔다.
1954년 집 없는 사람들을 돕자고 호소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의 이름은 전 프랑스인에게 각인됐다. 노숙자 가족이 집으로 사용하던 버스에서 얼어 죽은 3개월된 아기와 퇴거 명령서를 쥐고 파리 대로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성의 사연이 방송 출연의 계기였다.
이후 피에르 신부의 검은 망토와 모자, 지팡이는 프랑스 양심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1950년대에는 의회를 설득해 겨울에는 세입자를 내쫓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법의 입법을 관철했다. 지난해에는 휠체어에 앉아 저소득자 주택 정책에 대한 법 개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1912년 리옹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앙리 앙투안 그루에. 그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가톨릭 신부의 길로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였고 이때 얻은 암호명 ‘피에르 신부’를 평생 사용했다. 그는 유대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국외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전후에 그는 파리 교외의 낡은 건물을 수리해 노숙자들을 위한 숙소로 만들면서 빈민 구호 사업을 시작했다.
피에르 신부의 선종 소식에 프랑스 주요 인사들은 앞 다퉈 추모사를 보탰다. 우파 대통령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피에르 신부는 저항의 목소리를 상징했다”고 말했으며 사회당 대통령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 의원은 “가난에 대항해 고인이 오랫동안 부르짖었던 분노의 외침이 중단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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