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좋은글

풍경(風磬)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by 류.. 2007. 1. 17.

     

     

     

      때가 되면 풍경 끝에 매달린 물고기나 되어
      허공에 헛된 꿈이나 솔솔 풀어놓고
      나 하루종일 게을러도 좋을 거야
      더벅머리 바람이 살살 옆구리를 간지럽혀도
      숫처녀마냥 시침 뚝 떼고 돌아앉는 거야
      젊은 스님의 염불 소리를 자장가 삼아
      한낮에는 부처님 무릎에서 은근슬쩍 코를 골고
      저녁 어스름을 틈타 마을로 내려가서는
      식은 밥 한 덩이 물 말아 훌러덩 먹고 와야지
      오다가 저문 모퉁이 어디쯤
      차를 받쳐놓고 시시덕거리는 연인들의 턱 밑에서
      가만히 창문도 톡톡 두들겨보고
      화들짝 놀라는 그들을 향해
      마른 풀잎처럼 낄낄 웃어보아도 좋을 거야
      가끔은 비를 맞기도 하고, 비가 그치면
      우물쭈물 기어 나온 두꺼비 몇 마리 앉혀놓고
      귀동냥으로 얻은 부처님 말씀이나 전해 볼거야
      어느 날은 번개도 치고 바람이 모질게도 불어오겠지
      그런 날은 핑계 삼아 한 사나흘 오롯이 앓아 누워도 좋을 거야
      맥없이 앓다가 별이 뜨면
      별들 사이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칠 거야
      그런 날이면 밤하늘도 소란스러워지겠지
      그렇게 삶의 변두리를 배회하다가 내 몸에 꽃이 피면
      푸른 동꽃[銅花]이 검버섯처럼 피어오르면
      나 가까운 고물상으로나 팔려가도 좋을 거야
      주인의 눈을 피해
      낡은 창고에 처박혀 적당한 놋그릇 하나 골라
      정부(情婦) 삼아 늙어가는 거지
      세월이야 오기도 하고 또 가기도 하겠지
      늘그막에 팔려간 여염집 처마 끝에 매달려
      허튼 소리나 끌끌 풀어놓다가
      가물가물 정신을 놓기도 하겠지
      그런 연후에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내 안에 파문처럼 켜켜이 쌓아놓고
      어느 하루 날을 잡아 바람의 꽁무니에 몸을 묻어도 좋을 거야

       

       

       

      문신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Memento mori  (0) 2007.02.06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  (0) 2007.01.29
            내가 사랑하는 것들..  (0) 2007.01.14
            홍시의 고집  (0) 2007.01.10
            빈 강에 서서  (0) 2007.01.0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