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있는 일이다
바람 소리 귀 세워
두어 번 우편함을 들여다 보고
텅 빈 병원의 복도를 돌아가듯
잠잠히 내 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누군가
나날이 지구를 떡잎으로 말리고
곳곳에 크고 작은 방화를 지르고
하얗게 삭는 해의 뼈들을
공지마다 가득히 실어다 버리건만
나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다
나뭇잎 한 장도 머무르게 할 수 없다
내가
이 가을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내 의자에 앉아
정오의 태양을 작별하고
조용히 下午를 기다리는 일이다
정중히 겨울의 예방을 맞이하는 일이다
홍윤숙
How Where W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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