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저널리스트 이양일, 강수산나씨의 전원생활 이야기
끝없이 흐르는 호두껍질 속의 연가
그 집에는 마장(馬場)이 있었다. ‘말은 제주도, 사람은 서울’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든다. 서울이나 제주도가 아닌 그야말로 첩첩산중 오지에 둥지를 틀고 있다. 어떤 전자회사 휴대폰 단말기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던 이씨 가족이다. 그들이 살고 잇는 곳에서도 ‘휴대폰이 터진다’는 점을 컨셉으로 한 광고였다. 포장도로에서 산길 십리길. 해발 500m,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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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점심상은 스페인 요리로 차려져 있었다. 우리식으로 본다면 해물을 넣은 철판구이 볶음밥이
다. 산채 비빔밥에 된장찌개 정도려니 했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슬금슬금 혼돈이 일기 시작했
다. 선입견을 줄이기 위해 그녀에 대한 기존의 정보를 최대한 접하지 않으려 했던 까닭이다. 스페인
에 살고 있는 여동생에게서 배운 요리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잘 꾸며진 영화 세트장 같은 곳이었다. 파란 하늘에 빨간 감들이 매달려 있었고, 풀장(취수장)이 있는가 하면 조랑말, 닭, 토끼, 강아지들이 낙엽, 혹은 들풀 위를 뒹굴고 잇었다. 어떤 게 길짐승인지, 들짐승인지 쉬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 집 짐승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사람 정이 그리운 모양이다. 집은 키낮은 산장을 연상케 했다. 첩첩산중의 산장. 자칫 귀곡(鬼谷) 산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얘기를 듣노라니 그것은 귀곡(貴谷) 산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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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산나씨는 그 산장의 여주인이다. 산장이 아니라 농장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한때 소나 산양을 기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조용한 아침의 목장’이라고 불렀다.
‘소파동’ 이후 목장일은 그만두었지만 살림은 그 여느 두메산골의 그것이나 다를 바 없다. 산골 살림 20년째이다.
처음에는 90% 정도 자급자족하리라 생각했지만 기반 시설이 부족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생김새와는 달리 그녀는 억척스럽다. 한마디로 여장부 혹은 여걸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호두, 밤, 산나물, 감, 송이버섯 등이 짭짤한 수입원이다. 그럴려면 산 타기, 나무 타기는 필수적이다.
그녀가 감나무에 오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찔한 느낌마저 들지만 귀여운 다람쥐나 다름 없다. 주변 산자락 어느 곳이든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어디에 고사리나 산더덕, 송이버섯이 서식하는지를 꿰차고 있는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그 깊은 산 속에서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저간의 사정을 알면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10년이 넘게 화전민이 살던 터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새 집을 지을 때의 얘기 한 토막.
길 없는 길을 따라 건축 자재, 마감재를 운반하던 트럭 기사가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자꾸 힐끔거렸다.
‘혹시 여우에게 홀린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산 속에는 아담한 집채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수산나씨는 산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철칙을 세웠다. 첫째, 어떤 어려운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도 자연을 해치지 않는 한 문명의 이기는 최대한 활용한다. 둘째, 이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당분간은 정신 노동을 통해 도시에서 돈을 벌여, 육체 노동이 요구되는 일을 좀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쓴다. 셋째, 여름 땡볕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넷째, 실내 공간은 콘도미니엄만큼 깔끔하고 편안하게 꾸민다. 다섯째, 외출할 때에는 도시 여자보다 더 예쁘게 꾸미고 나간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라는 얘기가 새삼스러웠다. 그의 곁에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남편 이양일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 마직막 로맨티스트’이양일씨의 ‘선천적 자유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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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와도 같은 17세 연하의 수산나씨와 살고 있는 이양일씨는 프리랜서 팝 저널리스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 평론가 정영일씨를 일컬어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한 적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음악 평론을 하는 그를 보면서 이런 수식어가 떠올랐다.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여럿 있다. ‘도시의 카우보이’ ‘선천적 자유인’ 등이 그것이다.
그냥 ‘무늬만 카우보이’가 아니다. 카우보이 모자도 있고 여러 켤레의 카우보이 부츠와 수십 벌의 청바지도 있다. 무엇보다 조랑말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카우보이 차림을 한 외국 담배 광고 모델이나 영원한 반항아 제임스 딘, 혹은 서부 영화에 출연하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이 연상된다. 방송을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할 때 에는 10년 된 4륜 구동 짚차를 타고 다닌다. 그는 이 차를 ‘애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도 많다. 명함도 없고 정식으로 직장을 다녀본 적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다. 농사에도 별 재주가 없다. ‘한국포크싱어협회’ 고문직을 맡고 있지만 한사코 명함 새기기를 마다 한다.
월급쟁이 생활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결코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가 없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스트레스 제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 피해 다닌다. 돈이나 시간이 더 드는 한 있더라도 비켜간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을 이어 준 가교는 두말할 나위 없이 팝송이다. 수산나씨는 이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팝음악 애호가 모임에서 만났다. 숙명처럼 만났다. ‘빛이 어둠 속에서, 바람 부는 벌판에서도 외롭지 않은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바로 그 순간 두 연인은 호두나무 잎사귀 무성한 산자락에 유랑민처럼 정착했다. 당시는 ‘몽상가와는 사랑에 빠지지 마세요(Don't fall in love with a dreamer)'라는 노래가 유행할 때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 뒤 아들 유빈이를 낳았다.
▲ 한 시대를 풍미한 팝 저널리스트 이양일씨 |
초등학교 1학년인 유빈이는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벼락대신, 바람돌이, 지랄돌이, 다람쥐, 터미네이터…. 재주가 많아서 붙여진 것들이다.
말 타기, 나무 타기, 산 타기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선수’다. 엄청 높은 감나무에 오른 그들 모자를 보노라면 영락 없는 엄마 다람쥐, 아기 다람쥐다.
아빠와 함께 폼을 잡으면 부자 카우보이가 된다. 산길에 눈이 쌓이면 썰매를 타고 학교에 간다. 그때는 짚차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멀지 않아 조랑말을 길들이면 통학용으로 이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산골 생활에 익숙한 유빈이는 심심하다고 칭얼거리는 법이 없다. 지천으로 널린 게 놀이감이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자연 학습 도감이다.
그들은 그런 광경을 '하느님이 그린 천연 그림책'이라고 부른다. 그 속에서 뛰노는 유빈이를 보노라면 마치 ‘천연 기념물’을 대하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해가 짧은 산골에 어둠이 깔릴 무렵의 사방은 적막강산. 그야말로 별유천지 비인간의 세상이 되었다. TV 볼 일이 생겨 그집 식구들이 산아래 동네로 내려오는 밤길인데도 수산나씨는 익숙한 솜씨로 차를 몰았다.
산길의 지형지물을 훤히 꿰차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얻어온 호두를 매만지면서 속이 꽉 찬 그들의 삶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에 예의 그 초조함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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